유승민의 공허한 메아리
고하승
| 2015-07-08 14:59:23
‘국회법 개정안 파동’으로 사퇴 압박을 받아 온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사퇴 이유를 모르겠다”며 ‘버티기’로 일관해 왔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8일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격론 끝에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권고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유 원내대표는 결국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지난 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여당의 원내사령탑을 겨냥해 ‘배신의 정치’등을 언급하며 강하게 비판한 직후 13일만이다.
사실 새누리당 원내사령탑이 새정치민주연합과 공무원연금법 개혁안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그와 아무 관련이 없는 국회법 개정안을 끼워 넣자는 야당의 일방적인 요구를 들어준 잘못은 매우 크다.
더구나 국회법 개정안은 유승민 개인의 소신과도 무관한 일이다. 단순히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의 소신을 수용한 것일 뿐이다. 그것도 행정부의 권한을 무력화 시키고 국회의원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이른바 ‘입법독재’에 대해 야합을 해준 것이니 그 잘못은 결코 적지 않다.
따라서 유 원내대표는 지난 6일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사실상 폐기될 때 책임을 통감하고 자진사퇴를 선언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내 비박계 의원들이 ‘엄호’에 나서면서 유 원내대표는 10여일간 박 대통령과 맞서는 모습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이날 의원총회가 열리는 날까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보였다.
어쩌면 표 대결을 하면 재신임 쪽으로 결론이 날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실제 이날 의총에서 발언한 대다수 의원들도 “당청관계를 위해 유 원내대표가 어쩔 수 없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결국 더 이상 버티기 어렵게 된 유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 자진사퇴를 공식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는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우회적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실제 그는 “고된 나날을 살아가시는 국민 여러분께 저희 새누리당이 희망을 드리지 못하고, 저의 거취 문제를 둘러싼 혼란으로 큰 실망을 드린 점은 누구보다 저의 책임이 크다”면서도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주장했다.
마치 자신이 진즉 물러서지 않은 것은 ‘헌법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듣기에 따라서는 원내사령탑의 잘못을 지적한 박 대통령이 되레 헌법의 가치를 지키지 못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는 궤변이다.
국회법 개정안은 일찌감치 위헌성 논란이 제기될 만큼 잘못된 법안이 이었다. 특히 3권분립이라는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는 법안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기도 했다. 따라서 ‘헌법의 가치’를 운운하는 유승민 의원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더구나 우려되는 부분은 그가 “다소 혼란스럽고 불편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가치에 매달리고 지켜내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간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힌 점이다.
대체 ‘그 가치’라는 게 무엇인가.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의 뒤를 쫓는 걸 가치로 생각한다는 것인지, 국회의원들을 제왕적으로 만드는 ‘입법독재’를 가치로 생각한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어디 그 뿐인가.
그는 “지난 2주간 저의 미련한 고집이 법과 원칙, 정의를 구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저는 그 어떤 비난도 달게 받겠다”고 했다.
잘못하고도 아무 반성 없이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과연 법과 원칙을 지키는 모습이라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냥 당당하게 아무 변명도 하지 않고 “제 판단착오로 국회법 개정안을 공무원연금개혁에 끼워 넣은 잘못을 통감하고,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란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그가 “고통 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겠다. 따뜻하고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고 했으니 지켜보겠지만, 그를 향했던 깊은 신뢰가 이미 상당부분 무너져 내렸기에 별로 기대할 것은 없는 것 같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