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재신임’꼼수
고하승
| 2015-09-10 16:03:09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재신임 카드’를 꺼내들었다.
내년 총선 후보를 일반시민 100%로 구성된 국민공천단 투표로 결정한다는 공천혁신안에 대한 당내 반발로 궁지에 내몰린 문 대표가 “당원과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전격 선언한 것이다.
오는 16일 열릴 중앙위원회에서 혁신안이 통과되지 못하거나 통과되더라도 재신임 투표에서 신임을 얻지 못하면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얼핏 보면 당의 화합을 위해 대단한 결단이라도 내린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의 재신임 발언이 당내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가하면, 비노 진영인사의 반응 또한 지극히 냉소적이다.
실제 김한길 전 공동대표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 한다”는 글을 올렸다.
결과적으로 김 전 대표는 전날 문재인 대표가 재신임 카드를 빼어든 것을 ‘기교’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 역시 그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실제 안 전 대표는 “본질과 관계없는 사소한 부분에 집착하고 있다”며 “신임만 묻고 이대로 가면 당이 변하는 것도 없고, 총선 전망도 힘들어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안 의원은 문 대표가 재신임 방법으로 ‘기초선거 정당 공천 문제를 결정할 때 취했던 방법’(국민여론조사 50% + 전 당원 투표 50%)을 언급한 것에 대해 “당시엔 지방선거 공천 사안이라 공천의 주체인 당원에게 묻고 투표권을 가진 국민에게 물었다”면서 “당 대표의 재신임을 왜 국민에게 묻는지 모르겠다”고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도 아닌데, 당원에게 (재신임을)물어야지”라고 꼬집었다.
문 대표의 전날 기자회견을 “충정”이라고 표현했던 박지원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제안은 구당을 위한 순수한 입장이어야 했다”며 “중앙위 혁신안 통과 압박용으로 지도부와 상의도 없이 재신임 방법마저도 스스로 결정하려는 것은 마라톤 코스를 자신이 정해놓고 자기가 뛰려는 것과 같다”고 비난했다.
이어 “전당대회에서 선출되었기에 전당대회에서 신임을 물어야 한다. 대표가 다수를 임명한 중앙위에서 재신임을 묻는 것은 반대”라고 덧붙였다.
탈당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박주선 의원도 “(혁신안 최종 관문인)중앙위원회에서는 친노 세력이 60% 이상 점유하고 있다”며 “국민·당원을 합해서 재신임을 묻겠다고 하는데 대부분 친노 세력으로 뭉쳐져 있는 상황 속에서는 어차피 재신임 물어도 결과는 뻔하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문 대표가 빼어든 ‘재신임 카드’는 ‘기교’일 뿐, 거기엔 ‘진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는 뜻이다.
반면 문재인 대표와 사실상 ‘짝’을 이루고 있는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문대표의 재신임카드에 대해 "우리당의 지도력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결단을 한 것"이라며 "당의 상황에서 대표로서 중요한 결단을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어 "그런 결단이 우리 당을 회복시키고 선명한 야당성, 수권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문 대표 최측근인 노영민 의원도 ”문 대표는 기본적으로 기존 정치인들하고는 다르다. 사심이 없고 술수 같은 걸 참 싫어한다”고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결과적으로 문 대표의 ‘재신임 카드’가 친노와 비노 간의 힘겨루기를 더욱 부추기는 꼴이 된 셈이다.
어쩌면 박주선 의원의 지적처럼 직(職)을 걸고 재신임을 묻겠다는 문 대표의 기자회견은 친노에게 “뭉치고 동원하라는 동원명령”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실제 문대표가 대표직을 건다고 선언함에 따라 친노 세력이 새롭게 결집할 것은 불 보듯 빤하다. 그로 인해 ‘당원 권리 배제’등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는 공천혁신안도 비교적 수월하게 중앙위원회를 통과하게 될 것이다. 그에 따른 서너지 효과로 재신임 투표는 하나마나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고, 당 대표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만일 문대표의 노림수가 그런 것이라면 ‘재신임=꼼수’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나저나 정말 궁금하다. 만일 혁신안이 중앙위를 통과하면 내년 4월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이 승리할 수 있기라도 하는 것인가?
아니, 승리는커녕 최소한 100석 정도라도 지킬 수 있기나 한 것인가?
그렇지도 않다면 왜, 혁신안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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