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조급증, 결국 화를 불렀다

고하승

| 2015-09-30 14:13:14

편집국장 고하승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조급증이 결국 화(禍)를 자초했다.

김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28일 부산에서 만나 내년 총선 공천에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를 도입하기로 전격 합의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번에 여야 대표가 합의한 방식은 여론조사를 실시할 대상인 경선 선거인단을 모집하고자 하는 정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서 이동통신사업자에게 안심번호를 요청을 하게 되면, 이동통신사업자가 7일 이내에 유효기간이 설정된 안심번호를 전달을 해오고, 각 정당은 이 전달을 받은 안심번호를 이용해서 여론조사 경선 선거인단 모집하는 방식이다.

제법 그럴듯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우선 민심을 왜곡하는 ‘역선택’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역선택’이란 다른 당 지지자들이 경선에 참여해 일부러 가장 약한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을 말한다.

지난 2008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민주당 지지층의 ‘역선택’으로 인해 강력한 후보가 떨어지고 취약한 후보가 승리한 일이 있었다.

당시 공화당 당원 투표에서는 롬니 후보가 1위, 허커비 후보가 2위, 맥케인 후보가 3위를 했으나 완전국민경선제에서는 꼴찌였던 맥케인이 압도적 표차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민주당 지지층인 유권자들이 약체인 공화당 맥케인 후보에게 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선출된 맥케인 후보가 민주당 오바마 후보의 적수가 될 리 만무했고, 결국 대선은 민주당의 승리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한나라당의 제17대 대통령 후보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 하지만 대의원과 당원 및 일반국민 등이 참여한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앞섰다. 그런데 왜 박 후보가 패했는가. 역선택 가능성이 있는 일반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가 8.5% 포인트 가량 앞섰기 때문이다. 당시 야당지지층은 여론조사 과정에서 흠집 많은 이명박 후보의 낙마를 기대하면서, 그를 지지한다고 응답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이번에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가 합의한 내용은 그런 역선택을 방지할 아무런 수단이 없다.

보다 큰 문제는 정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자신들의 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의 주인은 일반 유권자나 당 대표가 아니라 당원이다. 그런데 당 대표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꼬박꼬박 당비를 납부해온 당원들이 자신들의 주권인 후보 선출권을 일반 유권자들에게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당을 사랑하고, 지원해 온 대의원들과 당원들에 대한 배신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또 민심을 반영한다면서 일반 유권자가 직접 투표현장에 참여하지 않고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반영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여론조사는 과학적으로 오차범위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한다. 한마디로 정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 정확하지 않은 결과를 경선에 반영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다.

특히 안심번호는 사실상 ‘모바일 투표의 변형’이라는 점에서 김 대표는 이를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모바일투표가 친노를 위한 제도란 사실은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실제 지난 2012년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본경선 투표 결과에서 민심과 당심이 분리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손학규 후보는 순회투표에서 1위를 달렸다. 순회투표는 현장에서 후보자들 연설을 듣고 대의원이 행사하는 투표 방법이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모바일 투표’에서 1위에 올랐다. 모바일 투표는 이번에 여야 대표가 합의한 것처럼 아무나 신청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 결과 대의원들의 지지를 받은 손학규가 대의원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 문재인에게 밀려나고 말았다. 이해찬 의원과 김한길 의원이 맞붙었던 민주통합당 대표 선거 당시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김무성 대표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점을 몰랐을 리 없을 것이다.

그럼, 왜 김 대표는 이런 황당한 합의를 하게 될 것일까?

아마도 조급증 때문일 것이다. 차기 대선을 2년 여 앞둔 가운데 김무성 대세론이 벌써부터 크게 흔들리고 있는 반면, 박근혜 대통령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찰떡 호흡’을 맞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대망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 SBS가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23일과 24일 TNS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오차범위는 95% 신뢰 수준에 허용오차는 ±3.1%p, 응답률은 11.7%)에서 반 총장은 21.1%를 기록해 김무성 대표(14.1%)와 문재인 대표(11.2%), 박원순 서울시장(10.1%), 안철수 의원(6.3%) 등을 큰 차이로 따돌렸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김 대표는 적장(敵將)과 손을 잡는 ‘최악의 수’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문 대표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김 대표에게는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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