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소리', 참신한 소재와 숭고한 감동...'세상을 향한 뜨거운 메시지'
서문영
| 2016-01-20 17:23:17
영화 속 김해관(이성민 분)은 10년 전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고독한 혈투를 벌이고 있다. 그러던 중 사람처럼 생각하는 로봇인 ‘소리’를 만나 딸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그렇기에 ‘로봇, 소리’는 스산한 올 상반기 극장가에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 수 있는 뜨거움을 내포하고 있다. 이 영화는 좌절 속의 용기, 절망에 굴하지 않는 희망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로봇, 소리’는 온 가족이 화합하는 설을 맞아 개봉시기가 정해졌다. 한층 더 기대감을 모으는 대목. ‘로봇, 소리’의 구체적인 메시지와 강점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1. 아버지는 엄격하기에 그 사랑도 깊다
영화 속 김해관과 딸인 김유주(채수빈 분)는 대부분의 부녀 사이가 그렇듯 겉보기엔 별로 친밀하지가 않다. 해관은 어릴 때 자신을 그토록 따르던 딸과 일종의 거리감이 생겼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여느 부녀가 그렇듯 서툴고 거칠며 무심한 표현으로 점차 그 골을 넓혀만 간다. 그러던 중 해관은 청천벽력같은 딸의 실종과 함께 오랜 세월을 그리움과 후회로 사무치게 보낸다.
사실 이 작품에서 이런 설정이 필요했던 이유는 아버지의 진심을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진심이란 마음의 근간이기에 평소보다 극한의 상황에서 더욱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봇, 소리’는 이를 통해 아버지의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녹여내고 있다. 진심의 반대말이 가식이라면 해관은 10년 동안 자신의 인생을 모두 버린 채 딸을 찾는 것에만 몰두한다. 진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 이처럼 아버지의 사랑이란 말보다 행동으로 표현되며 순간이 아니라 세월을 통해 겹겹이 쌓여진다. 이는 ‘로봇, 소리’의 중요한 감동 포인트이자 메시지인 셈.
해관은 딸과 동고동락할 때 결코 나오지 않던 표현을 딸이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표출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와 소리가 함께 펼쳐나가는 행보엔 먹먹함과 뜨거움이 동시에 묻어 있다. 무뚝뚝하고 투박한 아버지의 뒷모습에는 애틋함이 있기에 그렇다. 오죽하면 영화 속 모든 사람들은 해관에게 ‘이제는 딸을 잊고 본인의 인생을 살라’고 충고할 정도다. 그러나 오직 아버지만이 딸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찾으려고 한다. 이로써 ‘로봇, 소리’는 관객들에게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피력, 진정한 부성애가 무엇인지를 섬세하게 녹여내고 있다.
2. 로봇이 선사하는 역설적인 휴머니즘
소리와 김해관은 그 곳에서 처음 만난다. 이후 소리는 기계임에도 사람만큼 때로는 사람보다 나은 면모를 보여준다. 소리는 그동안 해관의 지리멸렬하고 외로웠을 사투에 따듯한 친구와 동료처럼 다가서는 것.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사실은 기계에게 공감능력과 측은지심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개념적으로 기계는 감정이 없고 교감할 수가 없기에 기계다. 그런데 ‘로봇, 소리’는 이를 통쾌하게 뒤집고 있다. 소리는 딸의 실종으로 괴로웠을 해관에게 사람이 해주지 못했던 희망과 버팀목의 역할을 하고 있기에 그렇다.
소리는 로봇임에도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 더 정확히는 학살-전쟁-테러 등 무자비하고 극악무도한 세태에 자신이 방조하거나 일조한 것에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이 모든 흉악한 짓들은 사람이 벌이는 일이지만 거꾸로 기계가 이에 대해 반성을 하고 있다. ‘로봇, 소리’는 이런 역설들을 통해 휴머니즘을 폭넓게 그려내고 있다. 세상의 평화와 인류애를 꿈꾸는 것은 사람이어야 맞지만 그 시대적 통감을 로봇이 함으로써 이 영화의 메시지는 한층 더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는 이호재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
같은 뜻의 다른 판본, 해관은 자신의 딸을 사랑한다. 원래 사랑에는 포기가 없다. 사랑하지 않기에 포기하는 것. 그러므로 김해관은 어떤 역경과 좌절 속에도 딸을 찾기 위해 열의를 다한다. 이 여정에는 해관의 투철한 의지와 신념이 담겨 있다. 하지만 해관은 사람이 아닌 기계인 ‘소리’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 역시 일종의 역설인 셈.
그러나 이는 따듯한 휴머니즘에 기초한 역설이기에 ‘아름다운 역설’로서 훨씬 더 풍부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더 나아가면 해관은 ‘소리’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소통하며 교감하고 있다. 해관은 마치 한 명의 인격체로서 ‘소리’를 대하고 있으며 ‘소리’ 역시 해관을 자신의 ‘소울 메이트’처럼 여기고 있다. 더불어 두 존재의 목적엔 뚝심과 열의는 있으나 탐욕이 없기에 더욱 숭고한 감정을 이끈다. 선한 사람들은 주위를 선한 마음으로 물들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로봇, 소리’는 가슴 한 편을 뜨겁게 하는 부성애를 통해 압도적인 훈훈함을 내포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때때로 사람보다 혹은 사람만큼 기특하고 진중한 ‘소리’의 활약으로 극의 감동과 재미를 증폭시키고 있다. ‘로봇, 소리’가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을 맞아 극장가를 따듯하게 물들이며 훈훈한 행보를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