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心, 아직도 모르시나요?
고하승
| 2016-02-02 11:26:23
4.13 총선을 목전에 둔 지금 손학규 전 민주통합당 대표의 마음은 어디에 가 있는 것일까?
야권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이른바 ‘손심(孫心, 손학규 마음)’을 놓고 아전인수(我田引水) 식 해석을 내놓고 있다.
더민주 측은 호남지역의 대표적인 '손학규계'로 꼽히는 이낙연 전남지사가 지난달 30일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장이 광주에서 주재한 저녁 만찬에 참석한 것을 두고 ‘손심’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이남재 동아시아미래재단 전략기획본부장이 장고 끝에 더민주 잔류를 결정한 것 역시 ‘손심’의 무게추가 이미 자신들에게 기울어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게 더민주 측의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당 측은 2012년 대선 후보 경선 때 '손학규 캠프' 대변인을 지낸 김유정 전 의원이 일찌감치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당을 선택한 것을 두고 손심은 자기들 편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지난달 13일 더민주 3선 의원인 강기정 의원이 버티고 있는 광주 북갑에 출사표를 던지고 표밭을 다지고 있다.
특히 광주·전남지역 현역의원에서 손학규 측으로 분류되는 김동철, 임내현 의원이 국민의당에 합류해 활동하는 것을 보면 손심은 이미 국민의당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손 전 대표의 입장은 어느 쪽인가.
그는 지난달 31일 7일간의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종인 위원장과 요즘 연락을 하고 있느냐' 질문에 "국내 정치문제에 대해 일체 관여를 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고 해서 안철수 의원이 추진하고 있는 국민의당에 힘을 실어준 것도 아니다.
실제 그는 제3당이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는 심정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정치에 새로운 역동성이 필요하다”며 “정말 새 판을 짜서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우물에 빠진 정치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길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전남 강진에 내려 간 이후 정치문제에 대해 비록 짧지만 이처럼 직접적이며 강도 높은 표현을 한 일이 있었는가?
없었다. 그 점에서 그의 발언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정치 재개'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손 전 대표가 정계에 복귀하게 될 것이란 관측에 대해선 필자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그 시기가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야권 맏형’자리를 놓고 혈투를 벌이는 총선 이전이어야 한다는 주장엔 동의하기 어렵다.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손 전 대표의 측근 인사들 가운데 이미 더민주를 떠나 국민의당에 합류한 인사들이 있는가하면, 장고 끝에 잔류를 선택한 인사들도 있다. 따라서 손 전 대표가 이제 와서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순간, 다른 한쪽에 참여하고 있는 자신의 측근들을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또 양당 모두 국민의 시선을 의식해 겉으로는 범국민적 지지를 받는 그를 부르는 것처럼 하면서도 양당의 대주주격인 문재인 의원이나 안철수 의원의 견제로 손 전 대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 더민주는 비록 문재인 의원이 대표직을 사퇴했다고는 하나 사실상 그의 입김이 작용하는 정당이고, 국민의당 역시 안철수 의원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정당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자기들 당으로 오라는 것은 손 전 대표를 또 다시 사지(死地)로 몰아넣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손 전 대표가 “정치에 새로운 역동성이 필요하다. 정말 새 판을 짜서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우물에 빠진 정치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길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국내 정치문제에 대해 일체 관여를 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은 연유가 무엇이겠는가.
어쩌면 손 전 대표는 자신의 이런 생각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더민주나 국민의당 모두가 국민의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기 때문에 정치에 새로운 역동성을 불어 넣는 ‘다른 길’, 즉 ‘새 판짜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 시기가 20대 총선을 앞두고 양당이 혈투를 벌이는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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