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점투성이 ‘상향식 공천’, 누구 탓인가

고하승

| 2016-03-22 12:20:18

편집국장 고하승


4.13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의 상향식 공천실험이 21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하지만 상향식 공천을 둘러싼 논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우려했던 문제들이 모두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실제 당내에선 경선무효 및 재심사 요청, 여론조사 열람신청 및 공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등 낙천자의 불복 움직임이 봇물처럼 쏟아질 기세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상향식 공천을 실시했지만, 실제는 ‘기득권 공천’라는 사실을 재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역선택(반대 정당 지지자가 약체 후보를 선택하는 행위)’문제가 곳곳에서 속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당의 주인인 ‘당원’의 의사가 존중받지 못하다보니 ‘당 정체성’논란을 부추기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우선 상향식 공천은 예상했던 대로 기득권 공천에 불과했다.

새누리당 지역구 의원들의 경선 통과율이 무려 8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역 10명 중 무려 8~9명이 경선에서 승리했다는 말이다.

결국 김무성 대표의 상향식 공천은 자신을 대표로 뽑아 준 현역 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이 여실히 입증된 셈이다.

역선택 문제도 심각했다.

과천-의왕 경선에서 패한 최형두 후보는 역선택을 독려하는 야당 후보 캠프 관계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을 캡처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거기엔 새누리당 여론조사 경선 일정을 상세히 알려주며 “박요찬 후보를 찍어라. 그게 우리 후보에게 유리하다”고 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의 글들이 담겨 있었다.

한마디로 야당 지지자들이 여당 지지자인 것처럼 속여 여론조사에 참여한 뒤 비교적 상대하기 쉬운 후보를 고르는 ‘역선택’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역선택 행위가 2~3%만 진행 되어도 후보의 당락이 바뀔 수 있다. 서울 서초갑의 경우는 이혜훈 전 의원이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불과 1%도 안 되는 미미한 격차로 승리하기도 했다.

당원들의 의사가 따로 반영되지 않다보니, ‘당 정체성’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경선에서는 2006년 열린우리당 공천으로 밀양시장에 당선됐던 엄용수 후보가 승리했다. 일반주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경선을 실시하다보니 당 정체성과 관계없이 무조건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유리하게 되는 것이다.

당 정체성에 맞는 후보를 내서 심판을 받는 게 정당민주주의의 기본인데 김무성 식 상향식 공천은 이런 기본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란 점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필자는 2014년 5월 8일자 <상향식 공천은 '기득권 지키기'>라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현역 의원들에게 일방 유리한 제도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었다. 또 2011년 6월 29일에는 <여론조사 경선 문제 있다>는 제하의 칼럼에서 역선택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 바 있다.

특히 2014년 12월 15일에는 <당원주권 사라지나>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당원주권이 사라질 경우, 즉 당원들이 사실상 소속 정당 후보를 선출하는 권한을 박탈당할 경우 당 정체성과 다른 성향의 후보가 당선되는 일이 발생할 것이고 경고한 바 있다.

즉 이번 상향식 공천의 문제로 드러난 ▲기득권 공천 ▲역선택 ▲정체성 논란 등의 문제는 이미 충분히 예견 됐었던 일로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이 이런 엉터리 같은 경선을 치룰 수밖에 없었던 것은 ‘상향식 공천을 실시해야 한다’는 김무성 대표의 아집 때문이다.

김 대표는 당연히 이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전당대회에서 자신을 당 대표로 선출해 준 현역 의원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 이 같은 경선방식을 주장했다면, 그것은 매표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새누리당에서 더 이상 이런 엉터리 같은 경선이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정치신인이나 사회적 약자의 정계진출, 부족한 전문성 보강 등을 위해 필요하다면 전략공천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엄연히 오차범위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역선택이 가능한 여론조사 경선을 실시해서도 안 된다.

특히 여야 각 정당이 당원주권주의를 강화해 정체성 논란을 일으키는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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