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 열정, 노력, 김영미 스타일리스트와의 만남

이규화

  | 2016-03-23 14:39:45

▲ 사진=외부제공
기자가 처음 김영미 실장을 접한 것은 배우 김효진이 이태리에서 열리는 TOD’S(토즈)의 2016 F/W 여성 컬렉션 패션쇼에 참석하는 스타일링 취재였다. 한껏 들뜬 목소리로 ‘미치도록 아름다운 이태리’를 연발하는 그. 아이 같은 순수함과 열정이 묻어났던 김영미실장을 본지 사무실에서 만났다.

막상 만나보니 프로페셔널한 열정과 책임감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해 뛰어든 후, 한 순간도 열심히 아닌 적이 없었던 김영미 스타일리스트. 이번 인터뷰는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왜 그를 원할 수 밖에 없는지 자연스럽게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김영미실장 만의 스타일리스트 역사를 펼쳐보기 위해서 처음 이 분야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알아봤다.

“(웃음)26살에 데뷔했어요. 직장에 다니다가 당시 수*아카데미에 전화해서 무작정 물었던 기억이 나네요. 연예인의 입을 옷을 고르고 코디하며 스타일을 만드는 직업이라는 얘기를 듣고 재미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다짜고짜 이 학원에 다니면 취업보장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서 학원에서 상담도 받아보지도 않고 은행에서 돈을 찾아 바로 등록했어요. 하하”

그에게서는 뭔가 하나를 결정하면 뒤 돌아보지 않고 돌진해 성취해 내는 열정과 진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처음 필드에서 일을 시작할 때부터 기회를 지나치지 않은 것은 행운으로 치부할 것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맨 처음 스타일리스트로 현장을 갔을 때는 배우 최철호씨가 하는 아침드라마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로 들어갔어요. 한 3개월 정도 하고 운이 좋아 바로 김설아씨 스타일리스트로 바로 들어가게 됐어요.”

“그리고는 당시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배우 김창숙, 명계남씨의 스타일을 하게 됐어요. 인생이라는 게 참 우연의 연속인 것 같아요. 그러다가 친구와 KBS휴게소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최강희 소속사에서 스타일리스트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죠. 듣자마자 바로 조건반사적으로 제가 하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웃음). 그래서 ‘광끼’ 막바지쯤 합류해서 하게 됐어요.(웃음) 그리고 그 이후에는 최민식씨도 하게 되고 안재모씨도 하게 되고요.“.
▲ 사진=외부제공
기회를 예의주시하는 매의 눈과 기회를 놓치지 않는 열정이 현재의 김영미 실장을 만들어 낸듯했다. 스타일링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할 터.
“일할 때는 부딪히죠. 혈기왕성할 때니까요. 최강희씨 하고는 5~6년 정도 시트콤,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를 같이 했어요. 99년 행진시트콤에서 물총달린 티셔츠, 독특하다 싶은 거는 다했어요. 엉뚱 발랄한 캐릭터를 최대한 살리려고 했어요”

함께 작업한 배우 중 가장 인상 깊은 배우는 누구였을까 물었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김희애씨라고 대답한다.

"배운 게 더 많은 시간에요. 김희애 언니는 완전 프로죠. 차분하고 일할 때도 운동화를 신어야 하고, 꾸밀 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미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해요. 당시 스타일리스트로서 현장에서도 힐을 신고 다녔는데 운동화 없냐고 하시면서 선물해주신 기억이 나네요.(웃음) 그 이후로는 현장에서는 뛰어 다니고 스튜디오 녹화 때는 멋을 맘껏 부리고 다녔죠. 하하. 배우와의 호흡이 곧 나를 성장시킬 수 있구나 생각하는 시간이었어요.“

톱 클래스의 배우를 더욱 빛나게 해주며 성취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힘들고 지칠 때도 물론 있었단다.

“애로 사항요. 없진 않았어요.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상황에도 촬영장을 가야했어요. 저 때문에 일에 지장을 주기가 싫어서 낮에는 언니들이 엄마를 돌보고, 밤에는 제가 간호를 했었어요. 또 심지어 상견례 하는 날, 촬영장을 갔던 일이 떠오르네요. 호텔에 가서 황급히 인사만하고 바로 촬영장에 달려갔으니까요.(웃음)”

이 분야에서 이미 잔뼈가 굵은 김 실장. 배우들은 그의 손길을 원하고, 후배들은 그처럼 되기를 꿈꾼다.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남에게 민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이러한 성격은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이면서 동시에 성장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됐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꿈꾼다. 발전하지 않는 삶은 김 실장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목표도 목표지만 내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저는 빼달라고 말하기가 싫었어요. 김희애 언니도 시아버지상이 있을 때 촬영장을 지키는 모습을 보니, 저도 다른 이들에게 민폐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웃음) 스타일리스트가 된 후 건대에서 패션디자인을 다시 전공했어요. 스타일리스트를 통해 배운 체험과 경험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기업에서 이미지 메이킹을 강의하는 것이 최종목표에요”
▲ 사진=외부제공
스타일리스트로 눈 코 뜰 새 없이 힘들게 일하면서 대학까지 다녔다. 또 한 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로서 1인 3역을 모두 해내려고 한다.하지만 최선을 다해 사랑을 줘도 항상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드는 게 엄마의 마음이다.

“(웃음) 아이 키울 때는 보험 일을 하는 언니가 많은 도움을 줬어요. 아무래도 저보다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기도 하고요. 너무 고맙죠. 남편도 많이 이해해주고 있고요. 저도 이유식 한 번 사서 안 먹여보긴 했어요. 아리아 파워레인저 공연은 다 보러 다녔고요. 아이 방학하면 해외여행도 같이 다녀요. 뭘 해도 미안한 마음은 늘 갖고 있죠.(웃음)”

마지막으로 김영미 실장은 요즘 어린 친구들이 못 버티고 떠나가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한다. 비단 스타일리스트를 꿈꾸는 청춘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스타일리스트가 되려는 친구들에게는 많은 걸 보고 접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정말 하고 싶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하라는 말도 전하고 싶습니다.”

인터뷰하는 내내 김영미 실장에게서는 2박3일 인터뷰를 진행해도 모자랄 것 같은 ‘열정’이 느껴졌다. 뭔가 일각을 이룬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열심'과 '책임감' 그리고 프로페셔널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를 만든 것의 8할은 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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