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는 역시 ‘親盧정당’이었다?
고하승
| 2016-03-23 14:53:58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당 안팎의 친노(親盧) 세력을 만만하게 봤다가 그들로부터 호되게 당했다.
물론 그는 ‘당부거부’라는 몽니 끝에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것도 사실은 김 대표가 스스로 쟁취한 것이라기보다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친노의 양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김 대표는 더민주가 친노에 의해 움직이는 ‘친노 정당’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했을 것이다.
실제 김 대표는 비례대표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2번에 배치했다가 당 안팎의 친노 세력으로부터 몰매를 맞았다. 심지어 “미치려면 곱게 미치든가…”라는 막말까지 나왔다.
대표적 친노 인사인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은 22일 새벽 자신의 트위터에서 “망하려면 곱게 망하라는 오래된 교훈이 있다. 미치려면 곱게 미치든가…”라며 “마음으론 이미 탈당했다”고 김종인 대표 체제의 더민주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봉주 전 의원은 김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수위가 조금 더 높아졌다.
그는 지난 21일 오마이 뉴스의 팟캐스트 ‘장윤선, 박정호의 팟짱’에 출연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 (김종인 대표가) 떠나는 게 차라리 낫다”라며 “이 상태론 선거 못 치른다. 이 상태로는 백전백패”라고 쏘아 붙였다.
앞서 김광진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에 “어떻게 자신이 셀프 2번을 전략비례로 공천할 수 있을까”라며 “내가 옳다고 믿는 정치와 그가 옳다고 믿는 정치가 다른 거냐”고 김 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고, 정청래 의원도 며칠 전 지지자들과의 산행에서 “김 대표의 ‘셀프공천’은 한마디로 말하면 말도 안되는 공천”이라며 “비례대표를 본인 스스로 맨 앞 순위로 배치하는 몰상식이 또 벌어졌다”고 맹비난했다.
이런 친노의 반발에 부딪혀 김종인 대표는 한 때 비례대표 2번에서 14번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맛봐야 했다.
실제 문재인 전 대표는 이날 오전 일부 비대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김 대표를 설득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전날까지만 해도 페이스북에 김 대표를 ‘군주적 리더십’이라 비판했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입장을 바꿔 䄚번에 올렸다가 14번으로 내렸다가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공’은 잊고 심한 욕설이 퍼부어지는 것도 그렇다”라며 김 대표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역시 전날 오전 트위터에 “후안무치도 유분수”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던 문성근 국민의명령 상임위원장도 이날 트위터 글에서 "김 대표의 비례 2번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김 대표를 측면 지원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우리에게는 승리가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다,
실제로 더민주 비대위는 김 대표의 비례대표 추천 몫을 4명으로 하고, 이들에 대한 순번 결정도 모두 김 대표에게 위임하도록 하는 등 김 대표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주었다.
한마디로 김 대표에게 제동을 걸 수 있는 세력도 친노이고, 그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세력도 친노라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김 대표를 향한 일종의 ‘경고장’일지도 모른다. 거기엔 ‘우리(친노)가 지켜보고 있으니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종인 대표가 23일 자신의 거취와 관련, "고민 끝에 이 당에 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대표직 유지 의사를 밝힌 것은 그들의 경고를 일단 수용하겠다는 뜻 아닐까?
그나저나 이번 ‘김종인 몽니’사건을 통해 더민주가 ‘친노에 의한, 친노를 위한, 친노 정당’이라는 사실이 재확인됐는데, 그것이 이번 총선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무척 궁금하다.
특히 리더십에 상처 입은 김종인 대표가 제대로 당을 꾸려나갈 수 있을지, 또 더민주에서 살아남으려면 친노 세력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김 대표가 향후 어떤 선택을 할지, 그런 모든 일들을 유추해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