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親文-親孫 ‘진검승부’펼치나

고하승

| 2016-04-18 12:22:55

편집국장 고하승


20대 총선을 앞두고 상당수의 정치평론가들은 선거가 끝나면 더불어민주당 내 친노 세력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당에서 밀어낼 것으로 내다보았었다.

아마도 김 대표가 당의 오너인 문재인 전 대표의 필요에 의해 임시로 세워진 ‘총선용 바지사장’이기 때문에 총선이 끝나면 결국 ‘팽(烹)’당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상황을 보니 당장 김종인 대표를 용도폐기 하기는 어렵게 됐다.

총선 직전인 지난 8일 문재인 전 대표는 광주 충장로에서 '광주 시민들에게 드리는 글'을 낭독했다.

그는 당시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저는 미련 없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습니다. 호남의 정신을 담지 못하는 야당 후보는, 이미 그 자격을 상실한 것과 같습니다. 진정한 호남의 뜻이라면, 저는, 저에 대한 심판조차,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그의 약속대로라면 그는 이제 자신의 말처럼 호남 주민들의 심판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정치일선에서 물러나야만 한다. 누가 보더라도 호남에서 더민주가 참해한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실제 호남 28석 가운데 더민주가 차지한 의석은 고작 3석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문재인 전 대표는 총선 직후 “호남이 저를 버린 것인지는 더 봐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아직 호남이 자신을 버렸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일선에서 물러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민의 뜻은 다른 것 같다.

<시사오늘>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비리서치>에 의뢰해 18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두 명 중 한명 이상이 문재인 전 대표의 정계은퇴에 찬성했다.

실제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에 불출마하고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는 응답이 55.1%에 달한 반면, '대선 불출마와 정계은퇴를 할 이유가 없다'는 응답자는 34%에 그쳤다. 10.9%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이 조사는 지난 15~16일 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988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며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문재인 전 대표는 김종인 대표를 버릴 수 없다. 당분간 김 대표를 끌어안아야 한다. 상황이 변해 자신이 대권주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기 전까지는 바지사장의 역할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결국 문재인 전 대표의 묵인 아래 더민주는 주요 정무직 당직자 인사를 했다. '김종인 친정체제'가 확정된 것이다. 그런데 김 대표 체제엔 손학규계가 대거 포함됐다.

18일 더민주는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열고 총부본부장에 정장선 선대위본부장, 조직본부장에 이언주 의원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총무본부장과 조직본부장은 옛 사무총장 역할을 하는 직책이다. 손학규 전 대표 측과 가까운 이들이 사실상 당의 핵심인 사무총장 업무를 하게 된 것이다.

정 총무본부장은 손 전 대표가 러시아 방문할 당시 수행했던 ‘손학규의 오른팔’로 불리는 핵심 측근 인사이고, 이언주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손 전 대표가 격려메시지 등으로 적극 지원한 인사다.

또 비대위원에는 이종걸, 진영, 양승조, 정성호, 김현미, 이개호, 이춘석 의원과 김영춘 당선자가 이름을 올렸는데 이 가운데 양승조, 이개호, 이춘석 의원과 김영춘 당선자 등은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사실 이번 총선에서 손학규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이 약진했다.

조정식ㆍ양승조 이찬열ㆍ이춘석 이언주ㆍ김민기ㆍ이개호ㆍ전현희ㆍ전혜숙 당선자 등 기존 의원들에 서울 고용진(노원갑), 인천 박찬대(연수갑), 경기 임종성(광주을), 김병욱(성남분당을), 충남 강훈식(아산을), 어기구(당진) 등 수도권과 충청에서 당선자를 대거 배출했다.

특히 야권에게는 사지나 다름없는 서울 강남을에서 새누리당 김종훈 현역 의원을 제치고 승리한 전현희 당선자와 이춘석(전북), 이개호(전남) 등 호남 당선자 3명 중 2명이 손학규계 인사들이다.

당내 손학규계가 비록 친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인물 하나하나를 볼 때 ‘경쟁력’에 있어선 친노를 능가한다는 평가다. 그런 평가가 손학규계 인사들을 당 지도부와 당 핵심요직에 앉히도록 했을 것이다. 어쩌면 용도폐기를 예상한 김종인 대표가 손학규계를 방패막이로 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날 친문 인사인 정청래 의원이 김종인 대표를 향해 포문을 열자마자 손학규계 인사를 전면에 내세운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아무래도 더민주는 앞으로 친문 세력과 친손 세력이 진검승부를 펼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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