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더 이상 ‘쉬쉬’할 문제 아니다

고하승

| 2016-06-13 11:55:02

편집국장 고하승


한동안 잠잠하던 개헌 논의가 정치권에서 다시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20대 국회 전반기를 이끌 정세균 신임 국회의장도 13일 국회 차원의 개헌추진 의사를 분명히 했다.

정 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대 국회 개원사에서 "내년이면 소위 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이 제정된지 30년이 된다"면서 "개헌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개헌은 결코 가볍게 꺼낼 사안은 아니다”라면서 “그러나 언제까지 외면하고 있을 문제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한반도선진화재단 등 6개 사회단체가 연합해 만든 국가전략포럼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헌, 우리 시대의 과제'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 세미나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해 이주영 나경원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영춘·서영교·박재호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두루 참석했다고 한다.

이날 인명진 경실련 공동대표 겸 갈릴리교회 원로목사는 주제발표를 통해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은 우선 개헌에 매달려야 한다”고 즉각적인 개헌 논의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인 목사는 “총선을 통한 국민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치가 이대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라면서 "87년 정치제제의 핵심인 대통령 5년 단임제(소위 제왕적 대통령제), 그리고 이것과 짝을 이루는 국회 양당체제는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당장 개헌론이 점화(點火)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개헌 논의를 당장 시작하자는 데 대해서 부정적인 뜻을 여러 차례 표해 왔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새누리당 20대 총선에서 참패했고, 국민의당의 선전으로 양당제가 막을 내린 상황이다.

박 대통령이 더 이상 개헌을 반대할 힘도 없고, 명분도 없거니와 실리적 측면에서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개헌논의에 나선다면 대선 이전에 개헌을 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대선주자들이 의지를 보이면 된다.

차기 유력 대권주자인 손학규 전 민주통합당 대표는 최근 일본 도쿄 게이오(慶應)대 특강에서 "지난 국회에서도 이원집정제나 내각제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많았지만, 앞으로 한국 정치에서 권력구조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상당히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대권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도 "분권을 화두로 한 개헌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대통령 중임제와 부통령제 도입 등을 위한 개헌을 공약하기도 했었다.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 역시 최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20대 국회는 1987년 체제의 공적과 한계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여의도 의사당에 가져와야 한다"며 개헌 필요성을 시사했었다.

지금은 몰락했지만 한 때 여권의 유력주자로 거론됐었던 김무성 전 대표도 대표적인 개헌론자였다.

그는 지난 2014년 중국 방문에서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다가 청와대와 마찰을 빚은 뒤 "불찰이었다"며 비록 사과했지만 여전히 개헌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친박계 내부에서조차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영입과 맞물려 분권형 개헌의 필요성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권 내부에선 이미 개헌논의를 위한 ‘멍석’이 깔려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문제를 가지고, 서로 눈치 보며 ‘쉬쉬’할 것이 아니라 공개적인 논의의 장을 펼칠 필요가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대통령 중심제라면 현재와 같은 5년 단임제냐 4년 중임제냐 하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고, 분권형이라면 정.부통령제냐, 이원집정부제냐 하는 논의가 이뤄질 것이다. 아니면 의회권한을 더욱 강화하는 의원내각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물론 그보다 필요한 것은 지역주의 완화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이다. 지금의 소선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방안은 극단의 갈등을 빚는 양당제의 폐해를 차단하기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