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론(待望論) vs. 대망론(大亡論)

고하승

| 2016-09-19 12:17:14

편집국장 고하승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금까지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여권에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야권에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각각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내년 대선에서 ‘반기문 대망론(待望論)’과 ‘문재인 대망론(待望論)’이 정면충돌할 것이란 의견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정치평론가나 정치부 기자와 같은 전문가들의 견해가 그렇다.

한마디로 현재 여야 선두를 달리고 있는 유력 대권주자들의 ‘대망론(待望論)’이 ‘대망론(大亡論)’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대체 그렇게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반기문 대망론’을 띄우는 친박(친 박근혜)세력과 ‘문재인 대망론’에 편승한 친문(친 문재인)세력에 대한 국민의 반감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도 최근 "새누리당 친박도, 이쪽의 친문도 15% 정도의 확고한 지지기반은 각각 있지만, 그것만 갖고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느냐"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 ‘반기문 대망론’이나 ‘문재인 대망론’의 원천은 김종인 전 대표가 지적한 것처럼 단단한 친박 15%와 친문 15%의 지지에서 기인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친박계 지지를 받는 반 총장의 지지율은 대체로 20% 초반대이고, 친문계를 등에 업은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10% 후반대로 두 후보 모두 15%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에서 마냥 맴돌고 있다. 그런 면에서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15%의 지지율이 이들 여야 선두주자에게 있어선 약(藥)이 아니라 독(毒)인 셈이다.

다른 지지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있어서 장애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표의 확장성을 가로막고 있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들 유력 주자들 모두 당내 경선에선 15%의 단단한 지지로 인해 그 누구도 감히(?)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되겠지만, 그로 인해 다른 지지자들마저 들어오지 못하게 돼 결국 본선에선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최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중간지대론’, 즉 국정을 농단하고, 정치를 어지럽히는 친박패권 세력과 친문패권 세력 등 ‘패거리 정치집단’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과 시민단체, 국민이 함께하는 이른바 ‘국민중심론’이 정치권의 핫 이슈로 떠오르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손 전 대표의 ‘국민중심론’은 여권의 친박 패권세력이 승리하는 ‘정권재창출’이나 야권의 친문 패권 집단이 승리하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국민이 승리하는 새로운 ‘국민정권창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그가 선택한 길은 쉽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정치사에서도 아직까지 ‘국민정권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정치인은 없었다.

그러나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김종인 전 대표는 “양대 정당이 지나치게 어느 한 계파로 쏠려 그 계파가 전체를 장악하는 모습을 보인다”면서 “정치라는 게 움직이는 게 생명이기 때문에 새로운 움직임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런 움직임은 이미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대선 후보 선출과정에서도 나타났다.

미국 대선의 첫 관문인 아이오와 민주당 코커스(당원대회)에서 개표 결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최종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힐러리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득표율이 0.2% 포인트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비록 샌더스가 패하긴 했으나 그것은 기적이었다.

애초 경선 시작 전에는 두 후보의 격차가 무려 40%~50%에 달했었다. 아무도 샌더스를 눈여겨보지 않았고, 그가 힐러리의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사람들조차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정통 민주당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 공화당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공화당에 아무런 기반도 없는 트럼프가 정통 공화당 유력 주자들을 제치고 후보로 선출된 것이다. 오랫동안 양당을 지배해온 집단이 ‘단기필마’ 후보들을 만나 고전하거나 패한 것이다. 양당 기득권 집단에 저항하는 민심이 미국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분출되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어쩌면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서도 똑 같은 현상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망론(待望論) 후보’가 ‘대망론(大亡論) 후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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