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손학규 끌어안기’ 성공할까?
고하승
| 2016-09-20 13:49:29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이른바 '제3지대론'과 관련해 종전보다 진일보한 입장을 밝혔다.
실제 그는 지난 19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분들이 당적을 내려놓고 나온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국민의당’이 제3지대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가 사실상 '국민의당'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래도 20일 오후 3시 전남 강진읍 강진아트홀에서 열리는 제255회 강진다산강좌의 강사로 나서는 손학규 전 민주통합당 대표를 의식한 때문인 것 같다. 손 전 대표는 이날 지난 2년여 동안 강진에 거주하면서 느꼈던 소회를 '강진 희망'이라는 주제로 강의한다. 그동안 칩거해 왔던 강진에서 마지막 강의에 나서는 것이다. 손 전 대표가 이 자리에서 사실상의 정계 복귀를 공식 선언하거나 대선 관련 메시지를 건넬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다.
손 전 대표가 줄곧 ‘국민이 중심이 되는’ 정치 새판짜기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
만일 강의도중 손 전 대표가 이런 의지를 거듭 밝힐 경우, 그것은 ‘중간지대’를 놓고 국민의당과의 일전을 예고하는 선전포고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안 전 대표가 손학규 전 대표를 끌어안기 위한 수단으로 부랴부랴 "다른 분들이 당적을 내려놓고 나온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며 배수진을 치고 나섰을 것이란 게 필자의 판단이다.
혹자는 ‘다른 분들’이라는 복수의 인사를 지칭하는 용어를 썼기 때문에 손 전 대표뿐만 아니라 그동안 국민의당에서 영입을 추진하던 정운찬 전 국무총리도 해당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정 전 총리는 당적이 없는 일반시민이기 때문에 ‘당적을 내려놓고’ 나올 필요가 없다.
따라서 안 전 대표가 비록 ‘다른 분들’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당적을 내려놓고’ 나와야하는 사람은 손 전 대표 한 사람뿐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손 전 대표 한 사람을 향한 적극구애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아마도 두 사람이 손을 잡을 경우, 이른바 ‘제3지대론’이 정치권을 강타하는 태풍의 눈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사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문재인 전 대표의 양강 구도를 깨기 위해선 드라마틱한 경선 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소위 ‘판’부터 넓혀야 한다는 데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전문가들도 대부분 ‘손학규-안철수 연대’가 실현될 경우 단숨에 ‘반기문 대세론’과 ‘문재인 대망론’을 무력화시키는 핵폭탄 같은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손학규와 안철수 가운데 누가 그 중심에 서야 하느냐 하는 점이다.
안철수 측은 국민의당이 지난 4.13 총선에서 ‘제3당’의 위치를 공고히 한만큼 당연히 안 전 대표가 그 중심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손학규 측은 국민의당 역시 ‘호남자민련’ 한계를 지니고 있는 만큼 전국정당화를 위해서는 완전한 새판짜기를 해야 하는 데 그 적임자가 손 전 대표라는 입장이다.
그러면 어느 쪽 주장에 더 힘이 실릴까?
사실 안철수 전 대표는 지지율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총선 직후만 하더라도 문재인 전 대표와 초박빙의 순위 다툼을 벌이며 중도층 결집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던 것에 비하면 지금의 지지율은 너무나 초라하다. 총선 당시 당 홍보비를 둘러싼 리베이트 의혹이 불거지는가하면, 사드배치 정국에서 사실상의 강력한 반대 의견을 표출하는 등 정치지도자로서의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이에 반해 손 전 대표는 지금 지지율이 미미하나마 상승세를 타고 있다.
더구나 그는 야권 내 다른 대선주자들과는 달리 손사모, 자유광장, 학규마을, 손의길연대, 민심산악회, 열린미래포럼 등 대규모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어 체계적인 조직 동원이 가능한 거물이다. 특히 그는 국회의원과 경기도지사,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치와 행정을 두루 경험한 탓에 안정적인 정치지도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정치부 기자들이나 정치평론가들이 그를 ‘대통령감 1순위’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당장 오늘 “강진에서 하산해 정계복귀를 하겠다”고 선언하기라도 하면, 언론의 관심이 그에게 쏠릴 것은 불 보듯 빤하다. 따라서 손 전 대표가 ‘중간지대’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안 전 대표가 손 전 대표를 끌어안으려면, 먼저 자신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욕심부터 버려야 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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