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하산을 기다린다
고하승
| 2016-09-26 16:02:21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야당들의 해임건의를 단칼에 물리치는 초강수를 두었고, 새누리당은 26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 거부를 선언했다.
이에 맞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국의 키를 확보해 대선 판을 일찌감치 다져 놓겠다며 잔뜩 벼르는 모양새다.
실제 박 대통령은 야당들이 24일 새벽 국회에서 단독으로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한지 약 13시간 만에 “비상시국에 형식 요건도 갖추지 못한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켜 유감”(장ㆍ차관 워크숍)이라며 곧바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박 대통령이 ‘20대 국회에 상생의 국회는 요원해 보인다’고 지적한 것을 보면 아마도 국회와의 관계를 포기한 것 같다.
어쩌면 박 대통령은 야당이 김 장관 해임 공세를 접는 등 이번 사태가 정리될 때까지 정국이 마비되는 상황을 감수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통령만 초강수를 두는 게 아니라 여당까지 강수를 두고 있다.
새누리당이 이날 국회 보이콧과 함께 정세균 국회의장에 대한 형사 고발 카드를 꺼내 든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정세균 의장이 여당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국회를 진행, 직권을 남용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시작된 이날 12곳의 국감장에는 '여당'이 없었다.
새누리당이 모든 의사일정을 거부키로 함에 따라 소속 의원 거의 전원이 국감에 불참하면서 '반쪽 국감'이 현실화된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이런 여권의 초강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감을 여당 없이 야당만으로 단독 진행하는 맞불을 놓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맞대응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야당 의원들만 회의장을 지킨 가운데 여당 의원 중에서는 외교통일위 간사인 윤영석 의원과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하태경 의원만이 국감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나마도 윤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에서 "국회운영을 정상화할 수 없다"며 여당의 입장을 전달한 뒤 1시간 만에 자리를 떴다.
그러다보니 여당 소속 의원이 위원장인 상임위는 위원장들의 불참으로 아예 개회하지도 못했다.
박 대통령의 ‘마이 웨이’와 거대 야당의 ‘실력 행사’가 격돌한 이번 싸움엔 출구가 없는 것 같다. 마치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위태하기 그지없다.
대체 왜 이렇게 여야가 극단적인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내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여야의 제로섬 승부 탓이다. 오직 대선 승리에 집착한 나머지 여야 모두 안보와 경제, 민생은 안중에는 없는 것이다.
손학규 전 민주통합당 대표가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전남 강진에서 하산채비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야 각 정당의 패권세력, 즉 손 전 대표가 말한 기득권 세력들이 오직 ‘대선승리’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것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그의 하산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손 전 대표가 소위 제3지대라고 불리는 새로운 ‘국민지대’를 만들려고 하는 것 역시 이런 정치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사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의 ‘비패권지대’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제3당지대’,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정상지대’ 등은 결국 손학규 전 대표의 ‘국민지대’로 통하는 것 아니겠는가.
모쪼록 정계개편을 통해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당 패권세력의 이익만 추구하는 집단을 무력화시키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쩌면 그 정치세력은 국민의 정권을 창출하겠다는 뜻에서 ‘국민지대’를 선언한 손학규 전 대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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