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의 국민시대를 위한 개헌
고하승
| 2016-10-11 14:54:48
여야 정치권에서는 '1987년 체제'가 이제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됐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극심해 개헌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지 이미 오래다. 국민들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선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런데도 개헌의 열쇠를 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등은 개헌에 매우 소극적이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개헌 논의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실제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헌과 관련해서는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앞서 박 대통령이 지난 1월13일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지금 우리 상황이 블랙홀 같이 모든 것을 빨아들여도 상관없는, 그런 정도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냐"며 개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바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문재인 전 대표도 개헌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무래도 '지금 이대로' 가면 야권주자들 가운데서 대통령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 굳이 개헌으로 판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문 전 대표는 최근 개헌이 필요하다는 한 측근 정치인의 설득에 "알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문 전 대표는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선호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개헌에 찬성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대통령제 고수’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다.
안철수 전 대표 역시 개헌 필요성에는 원칙으로 공감하지만, 개헌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지는 않다.
실제 그는 “유권자들을 만나보니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개헌 논의냐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아마도 개헌을 연결고리로 해서 친박과 친문을 제외한 제3세력이 국민의당이 아닌 다른 지대, 그러니까 ‘손학규의 국민지대’, ‘김종인의 비패권지대’, ‘정의화의 정상지대’ 등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개헌이 필요하다는 게 시대적 흐름이라면 그 누구도 이를 거스를 수는 없다.
여야 각 정당의 실세들이 비록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애써 ‘개헌의 시대적 흐름’을 외면하지만, 결국 도도히 흐르는 물줄기를 역행할 수 없듯이 시대를 역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개헌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먼저 정치권과 국민은 지금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절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개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전 대표가 선호하는 ‘대통령 4년중임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는커녕, 되레 대통령의 임기를 3년 더 연장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5년 단임제보다도 문제가 더 많다.
따라서 개헌을 하자면 그 방향은 마땅히 ‘분권형’이 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방 등 외치(外治)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맡고, 내치(內治)는 국회에서 선출한 총리가 맡는 형태의 이원집정부제도 고려할만 하다. 지금처럼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될 총리를 선출하는 ‘입법부’를 과연 믿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 정치권, 특히 국회의원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
아마도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이처럼 높았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국회에서 선출한 총리에 대해선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최소한의 절차가 필요하다. 개헌을 하려면 그런 방향으로 권력구조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즉 ‘국민 기본권’을 강화하고, 그 일환으로 ‘국민 참정권’을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헌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는 말이다.
이른바 ‘국민지대’라는 이름으로 제3지대에서 독자세력화를 구축할 것으로 알려진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정계복귀 일성이 이런 개헌을 전제로 한 ‘국민시대 개막’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개헌이 담론수준을 넘어 구체화된 논의로 이어지려면 동력이 필요하다. 정치권 논의만으로는 어려운 만큼 사회적 공감대를 토대로 한 '국민적 합의'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손 전 대표의 생각이 옳더라도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국민을 위한 개헌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그 선택은 이제 유권자의 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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