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 호헌파’ vs. ‘7공 개헌파’

고하승

| 2016-10-24 16:43:36

편집국장 고하승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언급한 ‘제7공화국’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응답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박 대통령은 24일 오전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지금은 1987년 때와 같이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생각 한다”며 “개헌을 위한 실무적 준비를 해가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개헌론에 대해 ‘경제블랙홀’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 온 박근혜 대통령이 돌연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아마도 손 전 대표가 지난 20일 “제7공화국을 열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분권형 개헌 의지를 피력한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 듯싶다. 그렇지 않아도 여야 정치권에선 이미 개헌에 대한 요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적어도 상식적인 생각을 지닌 정치인이라면 1987년 개헌 이후 30년 가까이 이어져 온 헌법 체계, 즉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데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국회 개헌추진 의원 모임에 전체 의원의 3분의 2 가까이 되는 190여 명이 참여하는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없애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마당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력한 ‘제3지대’ 대권주자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명운이 다한 ‘6공화국’ 체제를 끝장내고 새로운 ‘7공화국’ 시대를 열자고 했으니, 대통령으로서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거나 박 대통령이 뒤늦게나마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기우(杞憂)에서 벗어나 개헌을 적극 추진한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일단 환영이다.

개헌론에 불을 지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개헌은 제7공화국을 열기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라며 사실상 찬성 의사를 나타냈다.

손 전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이 같은 의사를 전한 뒤, “명운이 다한 6공화국을 바꿔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권력구조를 포함해 정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도 “대한민국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애국의 결단’이며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 대표 역시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헌을 안 하면 우리나라 장래에 좋지 않다고 본 입장에서 대통령도 일반적인 인식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옳다고 생각한다”고 적극 공감을 표했다.

문제는 개헌의 방향이다.

손 전 대표는 ‘제7공화국’을 열자고 제안 했다. 단순히 개헌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 아니라 공화국을 바꾸자고 한 것이다. 헌법이 바뀐다고 해서 6공화국에서 7공화국이 되는 건 아니다. 반드시 통치구조가 바뀌어야만 하는 것이다. 즉 폐해가 드러난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 등 다른 통치구조로 바뀌어야 7공화국이 된다는 말이다. 손 전 대표는 저서 ‘강진일기’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를 이야기했다.

한마디로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그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종인 전 대표 역시 “4년 중임제라면 개헌이 필요 없다. 4년 중임제면 대통령 임기를 3년 연장해주는 것뿐”이라고 ‘4년 중임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런데 차기 제왕적 대통령을 꿈꾸는 자들이 반대하고 있으니 걱정이다.

실제 문 전 대표는 "박 대통령께서 '그동안 개헌은 블랙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임기 말에, 또 우리 경제살리기에 집중해야될 시기에 개헌을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말해오셨다"며 "(그러다가) 갑자기 지금 개헌을 말씀하시니까, 이제는 거꾸로 무슨 블랙홀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인가, 그런 의아스러운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역시 "기억이 생생하다. 2007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대통령 4년 중임제 이야기 꺼냈을 때 당시 박근혜 대표가 '참 나쁜 대통령'이라 말했던 적 있다"며 "지금 임기 마지막 해에 개헌하겠다는데 현재 최순실·우병우 이런 일들을 덮으려는 의도는 아닌지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대놓고 개헌을 반대한다고 할 경우 ‘6공 체제 수호자’로 비춰질 것이 우려돼 개헌론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는 형식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반대 입장을 지니긴 어려울 것이다.

자칫하면 내년 대통령 선거가 ‘6공 호헌파’와 ‘7공 개헌파’의 격돌 양상으로 치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6공 호헌파’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구태세력으로 낙인찍힐 것이고, ‘7공 개헌파’는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개혁세력으로 비춰질 것은 불 보듯 빤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손 전 대표의 ‘7공화국’ 화두는 절묘한 ‘신의 한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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