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왜 거국내각 ‘우물쭈물’하나
고하승
| 2016-10-31 14:39:21
더불어민주당이 31일 새누리당이 제안한 거국내각 구성을 놓고 격론을 벌였지만 내부 의견이 엇갈려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기동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낮 국회에서 의원총회 결과 브리핑을 통해 "의총에서 발언한 23명 중 상당수 의원은 국회 주도의 거국중립내각이 국민 분노와 불안을 해소할 방법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살피기에 앞서 먼저 야권 잠룡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봐야겠다.
민주당 비노계 잠룡으로 꼽히는 김부겸 의원은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김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에 '진실규명을 위한 거국중립내각을 요구함'이라는 글을 통해 거국중립내각을 통해 진상을 규명할 수 있으며, 야당이 대한민국의 위기를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거국중립내각의 가장 큰 임무는 두 가지"라면서 "하나는 위기의 대한민국을 수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최순실 국기문란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관련자 처벌"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거국중립내각의 총리는 이 두 가지 임무를 확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면서 "경륜과 수사 의지를 두루 갖춘 적임자를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지금 침몰하고 있는 것은 '새누리당'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며 "차기 집권을 준비하는 정당은 침몰하는 배를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침몰하는 배에 올라타 승객들을 구해야 한다. 국가 비상시국에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정권교체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거국중립내각은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최초로 제안한 것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거국내각을 검토할 때”라며 거들고 나섰다.
최근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민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대표 역시 전날 오후 전남 강진 아트홀에서 열린 '나의 목민심서 강진일기' 북 콘서트에서 "탄핵과 하야를 외치는 소리가 결코 지나치지 않지만 실현되면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대통령은 겸허한 마음으로 여야와 협의해 책임총리를 임명하고 여야는 연정에 합의해야 한다. 대통령이 요구하지 않으면 여야가 국회에서 총리를 합의해서 대통령에게 지명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의 거국내각을 주장한 셈이다.
같은 날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방문한 민주당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도 “박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 돼 버린 상황”이라며 “스스로 거국내각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야권에선 ‘거국내각’에 대해선 거의 의견일치를 본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여당의 반대로 못할 수는 있어도 야당의 반대로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실제 새누리당은 주말인 전날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박근혜 대통령에게 여야가 동의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거국내각 구성을 촉구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다음날 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거국내각에 대해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도 발언자 23명 중 상당수가 거국내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거야 말로 정말 이상한 일 아닌가.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민주당을 장악하고 있는 친문(친문재인) 지도부의 반대 때문이다.
추미애 대표가 "새누리당이 오늘 거국내각을 언급했다는데, 듣고 싶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일축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과연 추미애 대표의 이 같은 비판이 올바른 것인가.
아니다. 거국중립내각은 여당은 물론 야당이 추천한 인물들로 내각을 구성하고 책임총리가 내치(內治)를 주도하는 체제다. 사실상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의미하는 것이다.
‘최순실게이트’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위해서라도 거국중립내각은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 친문 지도부가 반대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손학규 전 대표가 언급한 ‘새 판짜기’가 힘을 얻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부겸 의원의 말마따나 지금 침몰하고 있는 것은 새누리당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다.
새누리당이 망해야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대한민국이 침몰하는 것을 수수방관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안 될 말이다.
진정으로 정권교체를 염원한다면 민주당 지도부는 당리당략적 판단에 앞서 먼저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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