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지지층, 손학규-안철수 쪽으로
고하승
| 2016-11-01 12:03:26
거국중립내각 구성문제를 놓고 야권이 딜레마에 빠졌다.
가장 먼저 거국내각을 요구했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불과 닷새 만에 입장을 바꿔 ‘짝퉁 내각’이라며 반대로 돌아선 탓이다.
실제로 문 전 대표는 지난 26일 거국내각 구성을 제안하면서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강직한 분을 국무총리로 임명해 국무총리에게 국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겨야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당초 거국내각에 비판적이었던 여당이 이를 전향적으로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문 전 대표는 31일 “새누리당이 총리를 추천하는 내각이 무슨 거국중립내각이냐”며 “국면을 전환하려는 잔꾀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황당하다. 자신의 발언을 스스로, 그것도 불과 며칠 만에 입장을 뒤집어버린다면, 국민은 앞으로 그의 말을 어떻게 믿고 신뢰하라는 것인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오죽하면 같은 당 김종인 전 대표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거국내각 소리를 했다가 말을 바꿨다"며 "사드 당시처럼 야당은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꼬집었겠는가.
사실 문 전 대표가 이처럼 자신의 발언을 뒤바꾼 사례는 예전에도 무수히 많았다.
지난 4.13총선 때에도 그랬다. 당시 그는 호남지역에 만연한 '반문(反文)정서'를 달래기 위해 광주를 찾았고, 그곳에서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둔다면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했나.
민주당의 참패다. 호남의 심장부인 광주에선 8석 가운데 단 한 석도 얻지 못했으며, 전남에선 10석 가운데 겨우 한 석을 얻었을 뿐이다. 전북에서도 10석 중 고작 두석을 얻는데 그쳤다. 그런데도 그는 대선불출마선언을 하지 않고 입장을 바꿔 "호남 민심이 나를 버린 것인지 더 겸허하게 노력하면서 기다리겠다"며 오히려 대권을 향해 박차를 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그러면 문 전 대표는 왜 이번에도 180도로 입장을 선회한 것일까?
문 전 대표는 긴급 성명에서 “새누리당이 거국 중립내각의 총리를 추천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즉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새누리당이 총리후보를 추천했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새누리당은 누구를 총리 후보로 추천한 것일까?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민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대표, 민주당 비문계의 대표적 인사인 김종인 전 대표와 함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들이 책임 총리가 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어깃장을 놓고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실제로 당내 비문계인 김 전 대표가 거국내각 하에서 전권을 쥔 총리 역할을 하게 되면 내년 대선 판도가 크게 흔들리게 되고 나아가 김 전 대표가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개헌작업까지 주도할 경우 문 전 대표의 대권가도에 빨간불이 켜질 가능성이 있다.
또 손학규 전 대표도 이미 문 전 대표와 결별을 선언한 터여서 그가 책임총리가 되어 유력한 대권주자로 급부상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김종인 전 대표는 물론 손학규 전 대표 역시 자신이 거국내각의 총리가 되겠다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어 보인다. 굳이 나서서 반대하지 않아도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그런데 왜 그토록 조급증을 내는 것일까?
어쩌면 문 전 대표는 ‘최순실게이트’로 여권 대선주자들이 침몰하고 있기 때문에 이대로 가면 내가 당선될 수 있는데 굳이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 대한민국을 구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1일 공개된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의 10월말 정기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 적합도는 반기문 총장이 19.4%로 2위로 내려앉고 문 전 대표가 23.1%로 선두에 올랐다.
반 총장의 지지율이 9월 조사와 비교할 때 무려 7.9%p나 빠졌다. 그러면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올랐는가.
아니다 그의 지지율도 오히려 0.7%p 하락했다. 반면 안철수 전 대표는 9.6%에서 11.4%로 1.8%p 상승하며 6월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손학규 전 대표의 경우 3.4%에서 5.8%로 무려 2.4%p나 올랐다. 여야 대권주자들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반기문 총장에게 등 돌린 표심이 문 전 대표를 외면하고 손학규, 안철수 전 대표 쪽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오락가락, 잦은 말 바꾸기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문재인 전 대표가 자초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번 조사는 10월 31일 전국 만19세 이상 휴대전화가입자 1,088명을 대상으로 컴퓨터자동응답시스템을 이용 RDD로 진행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p이며 응답률은 14.6%였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