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에게 남은 유일한 카드는?
고하승
| 2016-11-08 10:00:00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고립무원 상태에 빠져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선택할 카드는 별로 없다.
혼돈의 정국을 정리하기 위한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는 거국내각과 책임총리제, 그에 따른 박 대통령 2선 후퇴 방안만이 유일한 해법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방법이 자발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느냐, 아니면 타의에 의해 이루어지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결과마저도 달라지게 만들 수 있다.
만약 박 대통령이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여야 대표 회담의 성사를 위해 김병준 총리 지명 카드를 실제로 철회할 경우 사실상 총리 지명권을 국회로 넘기거나 최소한 국회와 협의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경우 야권과 협의여하에 따라 박 대통령은 외치(外治)를, 국무총리는 내치(內治)를 담당하는 사실상의 ‘분권형 대통령제’에 해당하는 정도의 권력은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즉 박 대통령이 여야 대표회담을 통해 ‘완전 2선 후퇴-상징적 대통령’으로 전락하지 않는 타협책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끝내 김병준 카드를 고집할 경우에는 이 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국민 여론이 더 악화돼 결국 하야나 탄핵 국면으로 치달을 것이고, 강제로 끌어내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사 그 자리에 남아 있더라도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해법의 첫 실마리는 ‘김병준 지명 철회’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박 대통령은 이미 ‘김병준 카드’를 버렸다. 지난 4일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책임총리’ 문제에 대해서 입도 벙긋하지 않은 게 그 반증이다. 다만 자신이 지명을 철회하는 것보다 국회에서 인준을 부결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러운 퇴진이 이뤄지기를 원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야권은 그런 방식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무조건 백기(白旗)를 들라는 것이다.
한광옥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이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밝힌 영수회담 의지를 구체화하기 위한 사절로 7일 국회를 방문했으나 야권의 냉대는 여전했다.
한 비서실장은 이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날 계획이었으나 김 총리 내정자 지명철회와 박 대통령의 국회 추천 총리에게 전권 이양 의사를 표명하지 않으면 만날 필요가 없다는 민주당 지도부 입장에 따라 아예 만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가까스로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과장과의 만남은 성사됐지만, 박 위원장은 “김 총리 내정을 철회하거나 자진사퇴가 이뤄지지 않는 한 영수회담 논의에 나갈 수 없다”며 ‘지명철회 없는 영수회담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어디 야당뿐인가. 새누리당 내에서도 지명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야당의 수용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이에(김병준 총리) 집착하며 시간을 끄는 것은 시급한 사태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총리 지명을 철회하고 여야 영수회담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면서 박 대통령의 탈당, 거국중립내각 구성 수용, 김병준 국무총리 지명 철회 등을 촉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김병준 지명철회를 거부하며 버티는 건 무의미하다. 어차피 버릴 카드다. 그런데 단지 ‘자연 사퇴’라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시간을 끌다가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선제적으로 ‘총리 지명철회’라는 초강수를 둘 필요가 있다. 국가와 국민은 물론이고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게 바람직하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여야 각 당 지도부와 머리를 맞대고 이런 국정 혼란을 수습할만한 중립적인 인사, 그러면서도 국민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경륜 있는 인사를 찾아내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어쩌면 그것이 국민을 실망시킨 박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부디 그 마지막 기회를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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