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야당도 모두가 밉다”
고하승
| 2016-11-10 12:31:36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9일 국회 회동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추천 총리’ 제안을 “일고의 가치가 없다”며 공식 거부하고, 오는 12일 촛불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그러자 “대통령도 밉지만 야당도 밉다”는 취지의 댓글이 봇물을 이루었다.
물론 지금 ‘최순실게이트’에 따른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민심은 무당 같은 최순실씨에게 국정을 내맡긴 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당장 청와대로 달려가 박근혜 대통령의 손목을 잡아서라도 그 자리에서 끌어 내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마 대다수의 국민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게 도도한 민심의 흐름이다.
이런 민심으로 인해 박 대통령은 지금 사실상 '식물대통령'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오죽하면 남재희 전 장관이 '좀비대통령'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겠는가.
새누리당 상임고문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도 이날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통치능력을 상실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박 대통령이 정세균 국회의장을 찾아가 ‘국회 추천 총리’를 제안한 것은 이런 민심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인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은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면 총리가 내각 통할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 보장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배성례 홍보수석은 "헌법에 명시된 총리의 권한인 내각통할권, 임명제청권, 해임건의권 모두를 앞으로 총리가 강력하게 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대통령이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그런 뜻"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만 총리가 권한을 행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헌법 86조 2항에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결국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총리가 권한을 행사는 게 아니라 대통령의 명을 받아 수행하는 총리라는 얘기 아니겠는가.
그러면 야당은 문제가 없는 것인가.
대화자체를 거부하며 강경일변도로 치닫는 야당도 문제가 있다.
야권 인사인 박주선 국회부의장도 이날 “대통령이 야권이 주장하는 거국중립내각을 받아들이겠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했다. 다소 미흡하더라도 대통령이 요청하는 여야 영수회담을 하자고 하면 받아들어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 그렇게 불통을 지적했던 야권이 이 엄중한 상황에서 대화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은 국민적인 동의를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야당이 머리를 맞대고 국회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중요한 시점에 촛불집회에 참석해 길거리에서 해법을 찾으려는 게 과연 온당한 방법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여야 각 당의 지도부가 머리를 맞대고 국정혼란을 수습할 ‘실권총리’로 누가 바람직한지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 마저도 야당이 거부하고, 되레 이런 사태를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경우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실제 그런 분위의 글들이 인터넷 상에서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다.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지금의 국제정세나 국내사정을 보고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야당 이었으면 참으로 고맙겠습니다”라는 댓글에 무려 134명이 공감을 표시한 반면 비공감 표시는 27명에 불과했다. “야당 니들도 똑같은 거 다 알그든~!”이라는 댓글도 61명이 공감했다.
이는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으면, 야당이라도 나서서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요구일 것이다.
전날 막을 내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트럼프현상’은 ‘센더스현상’의 연장선이다. 민주당의 센더스 후보는 민주당 주류가 아니었음에도 당내 대세론 후보였던 클린턴의 간담을 써늘하게 만드는 저력을 보였다. 트럼프 역시 공화당에선 아웃사이더에 불과했지만 경선에서 승리하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와 유사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할지 모른다. 대통령에 실망하고 야당에 실망한 우리나라 국민들도 ‘정치판을 바꾸자’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정치인이 ‘새판짜기’를 주도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주도하는 ‘정치 새판짜기’가 이루어 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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