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문재인, 솔직하지 못한 탓?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16-11-29 11:04:36
편집국장 고하승
“말을 돌리려는 자와 속 시원히 말해보라는 자의 말싸움이었는데 말 돌리려는 자가 고집이 쎘다.”
이는 28일 저녁 방송된 JTBC의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대담을 지켜본 시청자가 남긴 반응이다.
당시 문 전 대표의 출연으로 인해 ‘뉴스룸’은 8.646%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심지어 한 언론은 네티즌들의 반응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의 강단 없는 모습에 지지자들이 약간 실망한 모습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처음에 문재인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엔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
첫째 공정한 선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대통령이 즉각 퇴진을 할 경우엔 헌법상 60일 이내 대선을 치르도록 돼 있기 때문에 조기대선이 불가피하다.
그러면 문 전 대표의 강력한 경쟁자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대선에 출마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된다. 또 불과 한 달 전에 강진 토굴에서 내려온 또 다른 경쟁자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아무런 준비도 못한 채 선거에 임해야만 한다. 더구나 두 달 이내라는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국민들은 각 대선후보들을 검증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게 된다. 이런 식의 선거라면 당연히 현재 여론조사에서 앞서가는 문재인 전 대표가 유리할 것이다. 결국 문 전 대표는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공정한 선거를 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둘째 그 기간 내에 개헌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어서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뜯어고치지 못하고 그대로 6공화국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사실 5차에 걸친 촛불시위는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동시에 ‘제2의 박근혜’가 나와선 안 된다는 국민들의 절박한 몸부림이다.
6공화국체제의 역대 모든 대통령, 그러니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도 박근혜정부의 ‘최순실게이트’와 같은 ‘비선실세 국정농단’사례가 있었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 즉 6공화국체제를 7공화국체제로 바꾸지 않는 한 ‘제2의 박근혜’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개헌을 반대하는 세력, 즉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호헌(護憲)’을 주장하는 정치인은 ‘정권에 눈먼 자’라는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실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같은 날 오전 인천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런 말을 했다.
그는 “야권의 패권을 쥔 정치세력은 개헌에 대해 정략이라 매도하고 있다. 이들은 탄핵이 중요한데 물을 흐린다고도 하는데 그렇지 않다. 탄핵 프로세스에 걸리는 기간에 개헌을 포함해 충분히 7공화국을 열 수 있다"며 “오히려 지금 이대로 가자는 자들이야말로 권력에 눈이 먼 정략집단”이라고 호되게 질책했다.
결과적으로 문 전 대표는 자신이 제왕적 대통령이 되겠다는 권력욕을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 되고 말았다.
뒤늦게 그런 사실을 깨닫고 ‘아차’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때부터 말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코미디 같은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손석희 앵커가 '(박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계속 주장하는 문 전 대표에게 ”즉각 퇴진을 하면 그 다음은 60일 이내 조기대선인데 그걸 염두에 두고 발언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한마디로 ‘6공화국체제를 바꾸지 않고 제왕적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 또 다른 후보들이 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유리한 조기대선을 해야 한다는 뜻이냐’고 물은 것이다.
그러자 그는 “60일 이내에 조기대선이 갑자기 닥쳐와서 대선을 준비하기 어렵다면 당연히 국민들이 의견을 표출해 주실 것”이라는 다소 황당한 답변을 했다.
이에 손석희 앵커는 “대통령이 즉각 퇴진 하면 60일 이내 대선을 치르도록 돼 있는데, 상황에 따라 국민들이 다른 의견을 표출해 주실 거라고 말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문 전 대표는 또 "헌법을 (기본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말을 바꾸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오락가락하는 그의 말에 순간 손 앵커는 말문이 막힌 듯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 그는 개헌에 대해서도 말을 바꾸었다.
그는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헌법이 무슨 죄냐? 헌법도 피해자”라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이는 헌법이 잘못된 게 아니기 때문에 개헌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날엔 “(나 역시) 개헌 필요성을 얘기해 왔지만 이 시기에 개헌을 말하는 것은 순수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현행 헌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지금 개헌을 하는 건 순수하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체 조기대선을 해야 한다는 것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지 아리송하고, 개헌을 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말자는 것인지 분명치가 않다. 아마도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건 그가 너무 솔직하지 못한 탓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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