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한국정치 (4)
시민일보
siminilbo@siminilbo.co.kr | 2016-12-05 10:00:00
힐러리 클린턴도 한때는 아주 싱싱하고 파릇파릇한 새것이었다. 남편인 빌 클린턴을 뒤따라, 면밀히 관찰하자면 선발대로 내세워 백악관에 들어올 당시의 힐러리는 새로움과 신선함 그 자체였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흐른 2016년 현재, 그녀는 모든 낡은 것들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그 까닭은 힐러리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만약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힐러리가 옛것이 되었다면 그는 요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에서 틀림없이 여유 있게 이겼으리라. 1946년생 개띠인 트럼프는 클린턴보다 한 살 위다.
우리나라의 어느 아파트 브랜드 광고에는 이러한 문구가 등장한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한다.” 거주 지역과 집의 평수가 한 인간의 계급과 정체성을 설명하는 세상에서 섬뜩할 만큼 정확한, 그냥 흘려듣고 싶어도 흘려들을 수가 없는 얘기다. 이 아파트 광고 카피에 발맞춰 나도 한번 주장해보련다. “당신이 만나는 사람이 당신의 연식을 말한다.”
단언컨대 트럼프는 나쁜 사람이다. 클린턴도 나쁜 사람이다. 한데 트럼프는 클린턴에 견주면 새로운 사람, 즉 신인(新人)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낮에는 나이 먹은 내로라하는 미국이 좌파 석학들을 만나 자신의 진보성을 뽐내고, 밤에는 나이도 많고 돈도 많은 월가의 쟁쟁한 금융업자들과 회동해 선거자금을 모금할 때 도널드 트럼프는 텔레비전 리얼리티 쇼에서 매주 새로운 젊은 사람들을 향해 “You are fired!”, 한국말로는 “넌 당장 해고야!”를 외쳤다. 비록 매몰찬 사장님 이미지였기는 했으나, 트럼프는 젊은이들과 어울려 호흡을 나누고 살을 부대끼는 나쁘지만 젊은 오빠였다.
트럼프는 나쁘지만 젊어 보였다. 반면에 힐러리는 나쁜 데 더해 낡기까지 했다. 트럼프가 중장년 백인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는 판세 분석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간 단견이다. 관건은 힐러리가 청년층 유권자들로부터 그녀의 선거캠프에서 기대한 만큼의 몰표를 수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제 눈길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지금의 한국정치는 두 개의 낡은 것들이 적대적 상호의존관계를 형성하며 장기간 동안 공존해오는 양상이다. 하나의 낡은 것은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이다. 이들은 낡은 것과 함께 나쁘기까지 하다. 설상가상 격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아픈 사람’이라는 세간의 조롱까지 받는 처지다. 또 하나의 낡은 것은 문재인 전 대표와 그가 실질적으로 당권을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과는 달리 드러내놓고 요란하게 새것과 싸우지는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새로운 것들의 출현을 은밀히 방해하고 억압하는 ‘저강도전쟁’을 매우 오래전부터 수행해왔다. 더불어민주당의 주력집단인 86세대 정치인들이 클린턴 부부가 워싱턴의 중앙정가에 입성한 시기인 1990년대 초반에 실무직 당직자 신분이나 국회의원 보좌진 형태로 여의도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민들 입장에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부분은 더민당에는 박근혜 대통령처럼 심각하게 아픈 인간은 아직까지는 없다는 거다. 여기서 아프다는 표현은 몸이 아픈 것이 아니다. 이른바 멘탈에 심각한 이상이 있음을 뜻한다.
2016년의 미국 대선이 나쁘고 낡은 클린턴과 나쁘되 낡지는 않은 트럼프의 대결이었다면, 2012년의 대한민국 대선은 낡고 나쁜 박근혜 대(vs) 연식도, 선악도 종잡기 어려운 문재인의 격돌이었다. 조기 대선이 예비된 2016년의 한국정치의 지형은 어떨까? 여론조사 지지율 1위라는 문재인은 새것의 단계를 거치지도 않은 채 논스톱으로 낡은 것이 되었다. 그는 일종의 ‘모태 구태’였던 셈이다. 더욱이 문재인을 착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국민들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에, 이와 정비례해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일반 대중의 비율은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정치 철학자였던 그람시는 위기의 개념을 옛것은 죽었는데, 새것은 태어나지 않은 상태로 정의하였다. 오늘날의 한국정치는 새것은 쥐뿔조차 보이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옛것은 죽기는커녕 작년에 왔던 각설이 또 오는 식으로 쌩쌩하게 활개를 치고 다니는 형국이다. 이건 위기도 아니고 한마디로 아수라장이다.
촛불시위에 연인원 400만 명의 국민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이 수많은 숫자의 인파가 단지 나쁜 것만을 쫓아내고 싶어서, 곧 박근혜 대통령 한 명 청와대에서 물러나는 일만을 위해 쌀쌀할 날씨를 무릅쓰고서 길거리로 몰려 나왔을까? 당연히 아니다. 국민들은 나쁜 것은 물론 낡은 것까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시키기를 갈구한다. 내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은 거대한 변화의 끝이 아니라 겨우 시작일 뿐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추진을 둘러싸고 야당이 드러낸 혼란한 난맥상과 지리멸렬한 자중지란은 국민들이 다만 나쁜 것을 쫓아내는 데 만족할 것이라고 착각해 일어난 사태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그저 종전부터 해오던 방식대로, 몸에 밴 관성적인 정치공학적 셈법에 따라 새누리당 비박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해 거래를 시도하고 흥정을 꾀했다. 이들은 본인들의 그러한 행동이 탄핵 가결의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국민들로부터 “참 잘했어요!”라는 평가와 박수를 받으리라고 내심 믿었으리라.
그러나 결과는 거대한 민심의 분노에 직면한 것이었다.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봇물 같이 터진 국민적 분노의 물결이 낡은 것은 놔둔 채 나쁜 것만 골라서 휩쓸어 가리라고 계산했던 것이 추미애의 패착이었고, 박지원의 오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오판과 패착은 국민의당 열성 지지자들과 더불어민주당의 열혈 지지층 사이에서 여전히 고집스럽게 공유되고 있다. 나쁜 것은 절대 용서받지 못해도 낡은 것은 그럭저럭 묵인될 수 있으리라는 안일하고 시대착오적 고정관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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