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에 대한 짧은 생각
공희준
| 2016-12-29 11:00:00
시절이 시절인지라 명성도, 실적도 보잘것없는 영세 정치 컨설턴트인 나한테조차 대선주자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물들에 대한 질문이 종종 들어오곤 한다. 그 가운데에는 당연히 안희정 충청남도 지사에 관한 물음도 포함된다.
나는 안희정 충남지사를 잘 모른다. 그리고 길게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을 만큼 그가 비중과 중요성이 있는 한국정치의 거물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짧은’이라는 중의적 의미가 담긴 형용사가 글의 제목에 들어간 까닭이다.
그래도 몇 마디는 보태야겠다. 안희정 지사가 ‘혁명’이라는 단어를 유달리 자주 사용하는 정치인인 이유에서다. 그는 심지어 「안희정의 함께, 혁명」이라는 제목의 책을 최근에 출간하기까지 했다.
혁명이라는 말처럼 오남용이 빈번한 단어도 없다. 이는 가짜 혁명은 넘쳐나지만 진짜 혁명은 드물다는 역설적 반증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짜 혁명과 가짜 혁명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참다운 혁명가가 이끄는 혁명은 진짜 혁명이고, 사이비 혁명가가 주도하는 혁명은 가짜 혁명이다.
다음에는 참다운 혁명가와 사이비 혁명가를 어찌 구별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법하다. 참다운 혁명가와 사이비 혁명가 모두 자기와 먼 곳에서의 불의에는 똑같이 공통적으로 분노한다. 그런데 불의가 본인 주변에서 저질러질 경우 옥석이 자연스럽게 구분되기 마련이다. 참다운 혁명과는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대해서는 더더욱 불의를 참지 못한다. 반면에 사이비 혁명가는 돌연 딴전을 피우가나, 또는 신속히 모르쇠 태도를 취한다.
중국 대륙을 놓고 벌어진 모택동과 장개석 사이의 국공내전의 승패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갈렸다. 모택동도, 장개석도 혁명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두 사람 전부 봉건주의와 제국주의로 대표되는 근대 중국사회의 양대 모순과 싸웠다. 다만 중대한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모택동이 가까운 곳의 불의와도 차별 없이 일관되게 싸운 것과 달리, 장개석은 주위에 불의에 한사코 눈을 감았다.
봉건주의 타도에 나선 모택동이 제일 먼저 들이받은 악덕 지주는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였다. 그는 소작농을 매질하는 부친에게 부자의 정을 끊을 각오로 결연히 거세게 대들었다. 이와는 달리 장개석은 광대한 대륙의 지배권을 잃고서 비좁은 대만으로 쫓겨난 이후에야 가족과 측근들의 비리를 비로소 엄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가짜 혁명가 장개석이 아니라 진짜 혁명가 모택동에게 수억의 중국 인민이 나라의 운명과 민족의 미래를 맡긴 것은 따라서 역사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안희정 지사는 먼 곳에서의 불의에는 확실히 뜨겁게 분노하는 사람이다. 그는 미국의 제국주의에 분노했으며, 전두환의 군사독재에 분노했으며, 한국사회를 냉전의 틀에 계속 가둬두려는 산업화 세대의 부패와 반칙에 분노했다.
허나 안희정은 가까운 곳에서의 불의에는 그가 그토록 비판하는 반기문 총장 못지않게 기름장어 같이 요리조리 빠져나가기 일쑤다.
첫째로 안희정은 영남패권주의와의 싸움에 소극적이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영남패권의 붕괴 과정이라고 제대로 평가하기는 했다. 영남패권은 대구경북의 패권주의와 부산경남의 패권주의를 두 바퀴로 삼아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그는 대구경북의 패권적 지역주의에서 비롯된 적폐는 매섭게 추궁할지언정, 부산경남의 패권적 지역주의가 낳아온 해악은 관대히 묵인하는 자세를 보인다. 안희정에게 TK는 정치적으로 먼 곳이지만, PK는 그와 반대로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리라.
둘째로 안희정은 이른바 86세대의 강고한 기득권 체제를 건드리지 못한다. 그가 젊어서 투쟁한 냉전세대는 이제는 한마디로 뒷방 신세다. 길거리에서 태극기 흔드는 것 이외에는 더 이상 할 수 있은 일이 거의 없다.
2016년 12월 현재, 대한민국 최대의 수구기득권 세력은 안희정과 마찬가지로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86세대다. 지나가는 청년들을 붙잡고 한번 물어보시라. 21세기의 대한민국 청년세대를 삼포세대로 만든 주범이 누구냐고 말이다. 응답자의 열 중 아홉은 우리나라 주요 분야와 조직에서 실질적 의사 결정권을 확고하게 틀어쥐고 있는 86세대들이라고 주저 없이 대답할 게다. 한데 안희정은 나이 들어 힘 떨어지고 돈 떨어져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내몰린 냉전세대는 비난해도, 따끈하게 난방이 돌아가는 넓은 중역실과 감사실에 편안히 앉아서 결재권을 행사하고 있는 비슷한 또래의 86세대는 결코 질타하지 못한다. 86세대가 안희정과 너무나 가까운, 정확히는 그가 속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안희정은 문재인과 친문세력의 오만과 탐욕에 결과적으로 부역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치며 분명히 확인된 사실이 있다.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문재인 전 대표와 친문세력은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세력을 흉내 내 국민을 이기는 권력이 되려고 집요하게 시도하는 중이다. 그들은 말썽 많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근본적 원인이자, 국정농단 세력이 발호하는 온상 역할을 충실히 해온 현행 6공화국 헌법에 가히 손도 대지 못하게 한다. 헌법을 고치자는 요구를 눈을 부라리며 막아대는 친문세력의 행태는 유신헌법을 비판만 해도 남산의 중앙정보부로 끌고 가 모진 고문을 가하던 박정희의 긴급조치 시대를 자동적으로 연상시킬 지경이다.
그럼에도 안희정 충남지사는 벌써부터 정권을 ‘득템’한 것처럼 예비 내각까지 구성해가며 권력과 자리를 나눠먹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문재인과 친문세력을 향해 전연 쓴소리를 못하고 있다. 문재인과 친문세력이 안희정과 이런저런 개인적 관계로 얽힌 탓이다.
나는 혁명을 하겠다는, 혁명가가 되겠다는 안희정의 선의와 진정성을 믿고 싶다. 아니, 믿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솔직히 같은 충청도 출신들끼리 통 크고 대범하게 좀 믿어주면 안 되나?
허나 선의와 진정성을 믿어준다고 해서 결과까지도 무턱대고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혁명가를 자처하는 안희정이 인민과 함께해 성공한 모택동의 길보다는, 사적 인연에 집착하다가 초라하게 패망한 장개석의 전철을 밟을 것만 같다. 먼 불의에는 분노해도, 가까운 불의에는 인내하는 그의 여태 모습을 보건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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