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정치인’ vs. ‘쇼맨십 정치인’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17-02-22 09:00:00
편집국장 고하승
“손학규 전 대표는 정계복귀 뒤 최근 몇 달간 말씀을 잘 들어보면 진심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가 이번에 이뤄야할 과제, 나아가야할 방향, 시대적 흐름과 과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어 경탄했다.”
국민의당 천정배 전 대표는 21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입당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해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진심”이라며 이같이 평가했다.
천정배 전 대표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사법연수원을 3등으로 수료했지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전두환 정권에서의 법관 임용을 거부하고 변호사의 길을 택할 만큼 강단 있고, 소신이 뚜렷한 사람이다.
그의 소신은 정치권에 들어와서도 흔들림 없이 유지돼 왔다. 그런 그가 특별히 다른 정치인을 향해 호평 했다면, 그것은 그의 말마따나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진심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손 전 대표를 향해 ‘경탄’이라는 용어까지 써가면서 ‘훌륭하다’고 극찬했다.
사실 천 전 대표뿐만 아니라 많은 정치인들이 손 전 대표에게 ‘존경(尊敬)’을 표하고 있다.
실제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손학규 선배는 인간적으로도 가깝고 제가 존경하는 분이다. 당을 달리하는 바람에 거리가 멀어졌지만 마음으론 늘 훌륭한 선배라 생각한다"고 말했고,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손학규 전 대표의 정치적인 경륜과 ‘저녁이 있는 삶’으로 대표되는 진정성 있는 생각들을 후배 정치인들이 존경하고 높이 사고 있다”며 ‘존경’을 표했다.
국민의당 김성식 의원 역시 “인간적으로도 제가 아주 존경하는 선배님”이라고 했다.
어디 그뿐인가. 더불어민주당 소속 인사들도 손 전 대표에 대해선 기꺼이 ‘존경’을 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병욱 의원은 "균형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보고 해결하려는 손학규 전 대표는 참 존경스런 인물"이라고 밝혔고, 문재인 전 대표의 캠프에 합류한 전현희 의원도 “손학규 전 대표를 존경하고 또 훌륭한 정치인으로 생각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민족문제, 통일문제, 핵 문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수십차례 해오면서 생각을 조율했다. 그 과정에서 이 분(손학규)을 존경하게 됐다”고 했다.
유력 정치인들이 손 전 대표를 평가하면서 공통적으로 들어간 단어가 바로 ‘존경(尊敬)’이란 단어인 것이다.
존경이란 단순히 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격이나 행위 따위를 받들어 공경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의(語義) 그대로 ‘높이여 공경하는 것’이 바로 존경이다. 인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존경은 특히 중요한 가치다. 멸시와 조롱거리,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정치에 있어선 더더욱 필요한 것이 상대로부터 ‘존경’을 받는 일일 것이다.
그러면 손 전 대표는 왜 이토록 많은 정치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일까?
정치에 사심(私心)을 담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정치부 기자들과 국회의원 보좌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통령 감’선호도 조사에서도 모두 1위를 차지한 것은 아마도 그런 손 전 대표의 인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그는 아직도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그의 ‘쇼맨십 부족’을 주요원인으로 꼽는다. 실제 그는 오로지 이미지 정치에 치중하는 다른 대선주자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나치게 정직한 발언으로 손해를 보는 일도 허다하다. 어쩌면 이 딜레마를 극복하는 게 그가 넘어야할 첫 관문일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국민을 위해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남아야 하는지, 아니면 대통령 선거를 위해 ‘쇼맨십 정치인’으로 탈바꿈해야하는지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필자는 손 전 대표가 광부 옷을 입은 채, 입가에는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사진을 발견했던 그때의 그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그의 온몸은 석탄으로 뒤범벅이 된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 특정 정치인을 향해 ‘존경’의 마음을 갖게 만든 사진이었다.
따라서 그에게 선거승리를 위해 날마다 논란거리를 만들어 내는 ‘쇼맨십 정치인’ 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국가의 예산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공공일자리 81만개를 만들겠다는 황당한 공약을 하는 정치인, 북핵 위협 앞에서 그 어느 때보다 국가안보가 중요한 시점임에도 ‘모병제’를 들고 나선 정치인, ‘최순실 게이트’로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친박 세력과 대연정을 말하는 정치인들은 모두 표만 생각하는 ‘쇼맨십 정치인’들이다.
손 전 대표에게 그런 정치인들을 닮으라고 권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냥 지금처럼 진솔한 정치인,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남아 있으면, 탄핵정국 이후에 국민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정치 지도자가 누구인가’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고, 결국 그를 택할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위대한 국민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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