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수 임명동의안 부결은 ‘協治’ 경고장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17-09-12 16:00:00

편집국장 고하승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11일 국회 표결에서 부결됐다.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것은 헌법재판소가 출범한 1988년 이후 처음이고, 문재인 정부의 국회 임명동의안 첫 부결 사례다.

이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장이다. 즉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이 아무리 높더라도 지금은 여소야대 상황이기 때문에 일방독주하기 보다는 야당에게 어느 정도를 양보하는 ‘타협의 정치’, ‘소통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말이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만 국민의 대표인 게 아니다. 국회의원들 역시 국민이 선출한 국민의 대표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과 국회는 정면충돌하기보다는 협력의 길을 모색했어야 옳았다. 그것이 협치(協治)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정부와 여당은 그동안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높은 지지율만 믿고 국회를 무시하거나 야당들을 압박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실제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와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 등 '잘못된 인사'를 바로 잡으라는 야당의 요구를 청와대와 여당은 대놓고 무시했다.

특히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에서 몇몇 중진의원들이 모여 ‘김이수 헌재소장 인준을 위해서는 최소한 문재인 대통령께서 오만과 독주, 야당을 무시하는 행위를 하지 말고 협치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당장 박성진 장관 후보자 임명을 철회하고 말썽 많고 자격 없는 류영진 식약처장을 해임하는 성의를 보여 달라'며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여권에 전달했지만, 청와대는 이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어디 그 뿐인가.

표결 당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과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 등이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조찬회동을 가졌지만, 직권상정을 통한 표결 날짜에 대해선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였었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야당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표결을 밀어붙이는 독선적인 행태를 보였다.

따라서 헌정사상 최초로 헌재소장 임명안동의안 부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한 일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여당과 청와대의 태도가 참으로 가관이다.

청와대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며 “헌정 질서를 정치적으로 정략적으로 악용한 나쁜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민주당 박완주 수석 대변인은 “민주당 120명 의원이 똘똘 뭉쳤지만 한국당의 몽니와 바른정당의 공조, 국민의당의 야합에 따라 오늘 인준안이 부결되고 말았다”며 야당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특히 민주당 원내대변인을 맡고 있는 강훈식 의원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국민의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국민의당에 뒤통수를 맞은 것”이라며 “지지율 5% 정당의 존재감을 보이려고 했던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당과의 연정을 심도 있게 고민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지금 국민의당과의 연정은 전혀 고민하고 있지 않다”며 “국민의당과 연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확인했다”고 잘라 말했다. 한마디로 ‘협치’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높기 때문에 민주당 혼자해도 된다는 오만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다.

이날 정우택 한국당 대표는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부결에 대해 "오만과 독주를 멈추고 겸허해지라는 민의의 경고"라고 평가했다. 또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는 “독선적인 인사를 하고 지지도만 자랑하면서 나를 따르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병국 바른정당 전 대표도 “4당 체제에서 야당은 그동안 여소야대임에도 불구하고 초반에 문재인 정부를 도와주자는 분위기가 많았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문재인 정부나 여당이 일방적으로 폭주하기 시작했고, 거기에 대한 응당한 답”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날 되돌아온 여당 대표의 반응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실제 추미애 대표는 임명동의안 부결에 대해 그동안의 오만과 독선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탄핵 불복이고 정권교체 불인정"이라며 야당을 향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런 걸 두고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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