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주인은 금배지가 아니라 당원이다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17-11-26 12:51:25
편집국장 고하승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가 안철수 대표의 ‘중도통합’ 행보에 연일 제동을 걸고 있다.
실제 박 전 대표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통합으로 정체성과 가치를 잃고 원내의석도 잃는다면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며 “다수의 의원이 반대 한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표는 전날에도 “당 대표는 소수 의원이라도 반대하면 설득이 필요하다”며 “하물며 다수의원이 반대하면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24일에는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의총에서 (통합)반대가 절대다수로 나오니 원외에서 논의하자고 한다”며 “그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이런 것이다. 국회의원들 다수가 반대하니 더 이상 ‘통합논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원외와 통합논의를 이어가는 것에 대해선 “(원내 다수가 반대하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주장은 선뜻 수용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것은 ‘금배지’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이 보고 있는 것으로 ‘오만하다’는 지적을 받기 십상인 까닭이다.
더구나 의원총회는 의결기관이 아니다. 당무회의나 중앙위원회의, 전당대회가 의결기관이다.
의총은 일반적으로 당이 결정한 중요한 입법사항 또는 정책사항의 국회의결을 위한 원내대책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당원의 총의가 반영되는 전당대회가 의원총회보다 중요시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민주정당이라면, 현역 의원들은 물론 원외위원장들과 당원들의 의사를 묻는 절차를 밟는 게 당연하다. ‘금배지’ 다수가 반대하니까 통합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논리는 패권양당에서나 통하는 논리이지, 다당제를 지향하는 국민의당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건 ‘중도통합’의 방향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기 이전에 상식의 문제다.
사실 ‘중도통합’은 거대한 패권양당에 맞서 소수정당이 택할 수 있는 여러 생존전략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를 논의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박 전 대표는 왜 기를 쓰고 이를 반대하는 것일까?
그는 "안 대표는 부인하지만 상대(유승민)는 단계적 3당 통합론을 주창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통합반대론자인 유성엽 의원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유한국당과 통합협상을 하는 바른정당과 어떻게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인가"라며 "신3당 합당의 길에 휩쓸려 달라는 것인데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언행을 보면 믿을 수 없다"고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한마디로 안 대표가 통합대상에 한국당은 없다고 단언하지만, 유승민 대표가 ‘보수중도통합’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 대표가 한국당까지 통합대상에 포함시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왜냐하면 그건 양당제 회귀를 뜻하는 것으로 다당제를 주창해 왔던 그에게는 ‘정치적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오히려 ‘중도통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불어민주당과의 통합을 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통합반대론자들이 아니라고 하지만 정대철 국민의당 고문 등 동교동계 인사들이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양쪽의 의구심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중도통합’논의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된다. 어떤 결정을 도출해 내기까지 당내 논의는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좋은 것이다.
원내뿐만 아니라 원외들은 물론 당원들까지 모두 논의에 가세해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도록 논의의 장을 활짝 열어 놓는 게 민주정당의 바람직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후 결정은 금배지들만 참여하는 의총에서가 아니라, 책임당원들 전체가 참여하는 전당대회에서 당원투표로 의결하도록 해야 한다.
그 결정사항에 대해선 당인으로서 결정을 따르면 되는 것이고, 그래도 도저히 그 결정을 따를 수 없다면, 소신에 따라 탈당하면 그만이다. 그게 민주정당의 참모습이다. 거듭 말하지만, 현역 의원들이 자신의 소신에 따라 통합 반대목소리를 내는 건 그들의 권리이고 나무랄 수 없지만, 논의 자체를 훼방 놓거나 반대하는 건 금배지의 횡포에 불과한 것으로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당내의 중도통합 반대 의원모임인 ‘평화개혁연대’가 통합을 무산시키기 위해 원외위원장들과 당원들에게 통합 반대이유를 설명하고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통합논의 자체를 못하게 막는다면, 그것은 금배지의 ‘갑질(甲質)’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전당대회 의결권에 있어서는 금배지도 한 표요, 책임당원도 한 표로 그 가치는 동일하다는 점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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