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유취’ 安 vs. ‘올드보이’ 朴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17-12-04 12:30:31
1969년, 당시 야당인 신민당은 5대 대선과 6대 대선에서 윤보선을 후보로 내세웠지만 5.16 쿠데타의 주역인 박정희에게 두 번이나 패배한데 이어 박정희 주도의 ‘3선 개헌’으로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거대한 여당에 맞선 신민당은 너무나 초라했다.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 때 YS가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고, 결국 신민당 대선 경선은 YS, DJ, 이철승 등 40대 주자들 간 3파전으로 치르게 됐으며 DJ가 최종승자가 되어 지리멸렬한 야당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었다.
아마도 당시 YS와 DJ가 없었다면 야당은 존재감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고, 박정희 정권의 민주화탄압은 더욱 가혹했을 것이다.
그런데 YS와 DJ의 ‘40대 기수론’은 처음부터 환영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당시 노회한 정객인 신민당 원로들의 반발은 상당했다. 심지어 당시 ‘올드보이’인 유진산 당수는 그들을 ‘젖비린내 나는 어린아이’에 비유하며 “구상유취(口尙乳臭)”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결과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루어졌고, 윤진산 당수를 비롯한 ‘올드보이’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모습이 마치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갈등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실제 박지원 전 대표는 최근 안철수 대표를 향해 “통합을 하면 여론조사에서 우리가 2당으로 올라간다는 (안 대표의 말은) 괴상한 논리이고 구상유취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올드보이’ 유진산이 YS, DJ, 이철승 등을 향해 ‘구상유취’라고 비아냥거린 것과 흡사한 양상 아닌가.
사실 당초 박지원 전 대표가 중도통합을 반대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중도보수대통합’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당시 필자는 유 대표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통합대상에 자유한국당을 포함시키는 것은 ‘정치퇴행’이고, 그런 통합을 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을 한 바 있다.
그런데 안철수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과 손잡는 일은 없다”며 “그럴 것이면 차라리 정치를 안 하는 게 낫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고, 유승민 대표도 “한국당과의 합당은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특히 바른정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바른정당이 ‘보수대통합’을 포기하고 국민의당과의 중도통합 논의에 적극 나설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지 않는가.
실제 하 최고위원은 4일 한 방송에 출연, "조만간 의원들이 다 모여서 빠르면 이번 주 안에 최종적인 입장을 정할 것"이라며 "입장이 정해지면 보수대통합은 없다는 공식적인 발표를 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그런 의심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데도 박 전 대표는 여전히 ‘제2의 YS 3당합당’을 운운하며 반대하고 있으니, 그 속셈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천정배 전 대표도 그렇다. 천 전 대표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시대와 민심에 역행하는 반개혁통합”이라면서 "촛불국민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천 전 대표는 지난 2015년 신당창당을 준비할 당시 유승민, 손학규 등을 지목하면서 “할 수만 있다면 신당을 함께 만들어 가고픈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특히, 유승민 의원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 없는 인물”이라며 “신당의 아이콘에 적합한 인물이다. 함께 하면 좋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런 그와 함께 한다는데 왜 이제 와서 그게 ‘민심에 역행하는 반개혁 통합’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직 이 문제에 대해선 더 논의가 필요하고, 당원들의 중지를 모아봐야겠지만, 이런 전후 사정에 비춰볼 때 아무래도 논의를 차단하려는 ‘올드보이’쪽보다는 비록 ‘구상유취’하더라도 논의를 진척시켜보려는 쪽에 더욱 호감이 가는 건 사실이다.
지금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는 데 비해 야당은 모두 그 존재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무기력한 상황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싹쓸이하고 문재인 정부의 독주가 더욱 기세등등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유승민의 ‘구상유취’한 중도통합론이 DJ와 YS의 ‘40대기수론’처럼 ‘올드보이’들의 조롱을 이겨내고 뭔가 일을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모쪼록 1969년 DJ와 YS를 통해 이루어졌던 신민당의 기적이 2018년 안철수-유승민을 통해 중도통합신당으로 재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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