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증원을 흥정한 국회에 분노한다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17-12-06 14:26:51
여야가 예산안 협상을 통해 확정된 국가직 공무원 증원 규모가 9475명이다.
1만 명도 아니고, 9000명이나 9500명도 아닌 이 숫자만 놓고 보면, 마치 필요한 인원을 정확하게 산출해 증원을 한 것처럼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그 협상 뒷얘기를 보면 이게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수준인가 싶을 정도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당시 협상 과정에 참여한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공무원 증원 예산은 마지막까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정부는 1만2221명 증원을 요구한 반면, 자유한국당은 예년 수준의 증원 규모인 7000명 이상은 곤란하다고 맞섰다. 그러자 국민의당이 불요불급한 내근직 2365명을 뺀 현장형 공무원 9856명 중에서도 자리 재배치를 통해 10% 정도(986명) 더 줄일 여지가 있다며 8870명을 제시했다. 물론 내부적으론 9000명까진 양보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했다고 한다. 국민의당이 제시한 8870명은 나름대로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초 1만500명 밑으론 안 된다는 완강한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1만 명 하한선을 허물 테니 국민의당도 9000명에서 좀 더 해달라”고 요구했고, 그래서 나온 게 9500명을 증원하는 안이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단순히 민주당 1만명 안과 국민의당 9000명 안의 중간지점을 택하자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거기에서 50명을 더 줄여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 수치 또한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단지 9500명은 반올림하면 1만 명에 가까워져 야당이 손해본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렇게 하자는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두 당이 9500명(민주당)과 9450명(국민의당)을 놓고 팽팽하게 줄다리기 하고 있을 때, 협상장에 정부 측 대표로 배석했던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그러면 중간치인 9475명으로 해 달라”고 중재안을 제시했고, 이에 두 당 모두 동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여야가 시장바닥에서 흥정하듯이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주먹구구식으로 결정을 한 셈이다. 당연히 공무원 증원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논의는 물론 어떻게 증원하느냐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즉 행정안전부가 조직 진단과 직무 분석 등을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공무원 증원규모가 결정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정치적 흥정에 의해 이뤄졌다는 말이다.
사실 예산안에선 국가직 공무원 9475명만 증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미 지방직 1만5000명을 채용하기로 한만큼 실제로 늘어나는 공무원 규모는 2만 4475명이다. 게다가 퇴직 인원이 약 3만가량 되기 때문에 내년 신규 공무원 채용 규모는 무려 5만 4000여명 가량에 달한다. 이는 공무원채용 규모론 최근 10년 이내 최대숫자다.
공무원은 일단 증원이 되면 줄인다는 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문재인정부는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라며 내년에 또 공무원을 증원시킨다고 한다. 문 대통령 임기동안 무려 17만 9000명을 증원시키겠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에선 문 대통령 공약대로 공무원을 늘일 경우, 30년 동안에 300조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에선 1만 2000명을 증원할 경우 6개월마다 3000억 원의 예산만 소요된다고 반박했다. 그렇다고 해도 1년이면 6000억 원이고, 그것을 17만 9000명으로 계산한다면 6개월마다 4조 3500억 원, 1년 소요 예산이 8조 7000억 원으로 30년이면 261조의 재정이 소요되는 것이다.
정부의 발표를 바탕으로 단순 계산만 하더라도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물론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소방이나 경찰 등 꼭 증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근직까지 무분별하게 공무원을 증원할 경우, 그것은 국가의 재앙이자 우리 미래세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익히 알다시피 잘 나가던 그리스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원인은 과다한 사회복지비 지출과 엄청난 규모로 공무원을 늘린 데 있었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방향이 마치 몰락 직전 그리스를 닮은 것 같아 걱정이다.
최근 그리스에서 77세 고령의 한 자국민이 광장에서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자식에게 빚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외쳤다. 그의 주머니에는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구하는 비참한 상황이 되기 전에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다”는 유서가 있었다고 한다.
부디 이런 비참한 사례가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토록 중요한 공무원증원 규모를 놓고 여야가 잡상인 흥정하듯이 주먹구구식으로 결정했다니 걱정이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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