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신당의 ‘유승민化’ 우려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18-01-21 12:03:49
자유한국당이 홍준표 대표를 대구 북구을 당협위원장으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 당의 최고결정권자인 홍 대표는 누구로부터 당원협의회 위원장 임명장을 받게 되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홍준표 대구 북구을 당협위원장은 홍준표 한국당 대표로부터 임명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셀프임명’인 것이다.
물론 규정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실제 한국당 당규 30조에 따르면, 당원협의회 위원장 자리가 빈 경우에는 당 대표가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조직위원장을 임명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그런 절차를 밟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 대표가 다음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셀프임명’을 하면서까지 보수의 심장인 대구를 택한 것이라는 비판을 잠재우기는 어렵게 됐다.
그런데 이런 홍준표 대표의 정치 행태를 답습하는 정치인이 있다. 바로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다.
홍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한국당 후보로 나섰다가 대패했다. 그런데 그는 패배에 따른 책임론을 일축하고,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유승민 대표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 바른정당의 대표가 됐다. 그로 인해 당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실제 1차 집단탈당 이후 2차 탈당에 이어 3차 탈당을 거치면서 잔류 의석은 이제 고작 9석에 불과한 ‘미니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 당대표가 되기는 했다. 하지만 안 대표는 자신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중도통합’이라는 대의를 위한 것이지 결코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님을 ‘통합 후 백의종군’ 선언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유 대표는 달랐다.
실제 유승민 대표는 지난 19일 오전 국회에서 통합선언 발표 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지금 백의종군을 얘기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안철수 대표가 유승민 대표에게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실 지금, 국민의당 중립파들은 외연확장을 위한 ‘통합’에 대해선 동의하지만 통합 후 국민의당이 ‘유승민화’ 할 가능성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유승민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그런 중립파들의 우려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통합 후 초대 당대표는 안철수 대표와 유승민 대표가 합의 하에 관리형 대표를 선출하고, 그 대표는 통합 과정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유 대표는 ‘셀프대표’가 되겠다는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니 문제다.
솔직히 유승민 대표는 이미 포용의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게 3차에 이은 집단탈당과정을 통해 여실히 입증된 마당이다. 그가 통합정당의 당 대표가 될 경우, 과연 그 정당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가 홍준표 ‘따라 하기’를 통해 통합신당의 당권을 장악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홍준표 대표가 지방선거 이후 자리를 지키기 어렵 듯, 그 역시 지방선거 이후 그 자리를 보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은 안철수 대표와 유승민 대표 모두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할 시점이다. 일단 성공적인 통합이 이루어지려면, 국민의당 중립파들만이라도 설득하고 그들을 붙잡아둘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통합신당의 유승민화’에 대한 그들의 우려를 불식시켜줄 필요가 있다.
안철수 대표는 ‘외연확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중도통합 추진을 강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통합이 마이너스 통합이 되어선 안 된다며 플러스 통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든다.
통합신당이 급격하게 유승민 대표 쪽으로 기울어진다면, 가장먼저 국민의당 내 중립파들이 등을 돌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그가 ‘셀프대표’가 되는 순간, 안철수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마저 신당을 떠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통합이라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해법은 오직 하나다, 유 대표도 안 대표처럼 통합 후 백의종군을 선언하는 것뿐이다. 이 시점에서 두 사람이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는 모양새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야만 안 대표와 유 대표 모두 지방선거 이후 차기 대권을 도모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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