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무산, 이제 국민이 나서야 하나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18-04-29 14:00:00

편집국장 고하승




6월 개헌은 결국 무산됐다.

6·13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투표를 하려면 국민투표법 개정안을 늦어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한 시한인 23일까지는 처리해야 하는데, 여야가 개헌 내용과 방송법 개정안, 더불어민주당 댓글조작 의혹 특검여부를 놓고 대치하다 처리시한을 넘기고 만 것이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투표법이 기간 안에 개정되지 않아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실시가 무산됐다”며 자신의 공약이었던 ‘6월 지방선거 동시개헌’ 무산을 선언하고 말았다.

이를 두고 정치권은 서로 “네 탓“이라며 꼴사나운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라며 모든 책임을 야당에 돌렸고, 민주당 추미애 대표도 2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야당들은 입으로는 ‘개헌, 개헌’ 하지만 행동은 전혀 옮기지 않고 개헌 골든타임 기회를 날려버렸다”고 야당을 탓했다.

하지만 사실은 야당보다도 문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책임이 더 크다.

이른바 87년 체제의 낡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한다는 목소리는 2000년대 초반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터져 나왔었다. 정치권에서도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는 정부 형태의 개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집권세력의 반대로 끝내 개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더 이상 제왕적대통령제가 유지되어선 안 된다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개헌을 한다면, 당연히 ‘제왕적 대통령제’를 종식시키는 권력구조의 개편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현행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단지 대통령의 임기를 ‘5년 단임제’에서 ‘4년 연임제’로 바꾸었을 뿐이다. 이는 5년 임기의 ‘제왕적대통령’을 오히려 8년 임기가 가능한 ‘황제대통령’을 만든다는 점에서 현행 5년 단임제보다도 더 나쁜 제도다. 이 같은 개헌안을 야당이 이를 수용할리 만무하다.

국회의석의 과반이 넘는 야당이 반대하는 개헌안은 결코 국회에서 통과될 수 없다. 따라서 야당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개헌안을 대통령이 일방통행 식으로 발의한 것은 사실상 ‘개헌 의사가 없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거수기 노릇을 하려했던 민주당의 책임 또한 적지 않다. 민주당은 야당시절 제왕적대통령제의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했었다. 당시 우윤근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대표연설을 통해 "문제의 근원에는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 권력구조가 있다"며 분권형 개헌론을 꺼내들기도 했었다. 민주당내 많은 의원들이 이에 동조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정작 문 대통령의 ‘제왕적대통령제 유지’에 대해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민주당내 그 많던 분권형 개헌론 자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헌무산의 가장 큰 책임은 4년 연임의 ‘황제 대통령제’를 만들려 했던 문 대통령과 그에 동조한 민주당 의원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야당에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개헌논의에 소극적이었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책임이 상당하다. 민주당과 한국당, 그 거대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바른미래당과, 평화민주당, 정의당 등 소수 야당의 무능함 또한 개헌무산에 한 몫을 했다. 과연 국민은 이런 정치권을 믿고 있어도 되는지 의문이다.

정치권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국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은 “개헌논의를 당리당략을 앞세우는 정당에만 맡겨선 안 될 것 같다”며 “낡은 6공화체제를 마감하고 새로운 7공화국을 여는 데 국민주권개혁회의가 앞장 서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소속 정당을 떠나 제왕적대통령제 폐해를 걱정하고, 지방분권, 국민주권강화, 양극화 해소, 그리고 선거제도 개편에 동의하는 제반 정치세력을 결집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거기에 국민 참여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여야 각 정당이 6.13 지방선거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국민참여’를 독려하는 손학규 의장의 의중이 궁금하다.

어쩌면 개헌의 주인공은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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