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탈북 했는데 북송 대화라니...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18-05-30 14:36:42

편집국장 고하승




'4·27 판문점 선언' 당시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에 합의한 대가로 우리 정부가 2016년 4월 중국의 북한식당에서 집단 탈출한 13명의 종업원들을 강제 송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보수진영 일각에서 나온바 있다.

친정부 성향의 종편 JTBC가 집단탈북은 그들의 자유의사가 아니었다고 보도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실제 한 탈북종업원이 인터뷰에서 “이제라도 (북으로)갈 수 있다면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변 등 극히 일부의 진보성향 단체를 제외한 상당수의 국민들은 그런 말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탈북자들이 북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피해가 돌아 갈까봐 ‘납치’를 주장한다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실제 '탈북 여종업원 북송'에 대해 국민의 70% 이상이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최근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현재 여종업원들은 자유의사로 한국에 와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측의 송환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탈북 당시 변호사협회에서 추천한 국정원 인권보호관이 13명 가운데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문재인 정부가 이른바 적폐청산의 일환으로 2017년 6월 설치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철저한 조사를 했음에도 불법 납치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민변의 ‘납치’주장은 그야말로 황당한 주장일 뿐이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북한은 29일 '집단 탈북'한 여종업원들을 송환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성의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들의 송환을 거듭 촉구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보수 정권이 남긴 반인륜적 문제는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박근혜 정부시기에 발생한 여종업원 집단 탈북 사건을 '반인륜적·반인도적 문제'로 규정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선결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통신은 "북남 사이에 민족적 화해와 평화의 기류가 흐르고 있는 지금 피해자(집단 탈북 여종업원) 가족들을 비롯한 우리 인민들은 기대를 안고 사랑하는 딸자식들이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다"며 "우리 여성 공민들의 송환 문제에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겨레 앞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것은 북남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남조선 당국의 성의와 의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라면서 “송환을 거부한다면 판문점 선언 이행에 역행하는 엄중한 범죄 행위"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매일 대외선전용 매체를 통해 집단 탈북 여종업원들의 송환을 요구해왔다.

그러자 통일부의 태도가 달라졌다.

실제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30일 정례브리핑에서 ‘송환은 없다’는 강경입장에서 물러나 집단탈북 종업원 송환 문제를 '대화'로 풀어나가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대화 결과에 따라 집단 탈북민들을 강제북송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들이 정말 납치된 것이라면,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그들의 뜻에 따라 북으로 돌아가도록 조치를 취해주는 게 맞다.

하지만 납치 정황이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대화’ 운운하며 강제북송 가능성을 열어 놓는 건 그들을 극단적인 공포 속에 밀어 넣는 행위로 차마 인간으로서는 해선 안 될 일이다. 중국에서 북송될까봐 두려움에 떨던 그들이 대한민국에 와서까지 북송의 공포에 떤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들이 북송될 경우, 고모부를 고사포로 쏴죽이고 이복형을 독살한 정권이 그들에게 어떤 비인권적인 행위를 가할지 불 보듯 빤하지 않는가.

다시 말하지만 남북대화를 환영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에 거는 기대가 크다. 그 결실로 이상가족 상봉이 이루어진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다. 하지만 12명의 어린 탈북 여성 종업원들을 사지로 내모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반대다. 대한민국 정부는 목숨 걸고 탈북한 그들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줄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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