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적수는 3번?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18-05-31 13:08:37
편집국장 고하승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어느 당을 적수로 꼽고 있을까?
통상적이라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꼽는 게 맞다. 그런데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생각하는 맞상대는 한국당이 아니라 바른미래당인 것 같다.
실제 민주당은 지난 29일 열린 경기지사 후보 토론회와 30일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를 네거티브로 규정하며 바른미래당의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와 김영환 경기도지사 후보를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31일 브리핑에서 안 후보와 김 후보를 겨냥, "상대가 무조건 잘되는 건 못 보겠으니 헐뜯고 보자는 식의 막다른 길로 향하는 구태정치인의 모습"이라고 폄하했다.
토론회에서 집요하게 민주당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의 자질검증을 요구한 것을 구태정치라고 깎아 내린 것이다.
그러면서 안 후보를 향해 "끝날 때까지 박원순 시장만 공격하는 모습에서는 안철수 후보의 조급함만 그대로 묻어났다. 한 때 대선후보와 당대표를 지낸 중량감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고 직격했다.
김영환 후보에게는 "찌라시 수준 정도의 정보를 열거하며 상대후보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이 범죄자 다루듯 추궁하는 모습은 마지막으로 향하는 정치인의 모습 같았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경미 박원순캠프 수석대변인도 이날 안철수 후보를 겨냥, 상대 후보로부터 집중 포화는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지만 핵심에서 벗어난 지엽적인 질문이나 인신공격에 가까운 질문을 하고, 마치 청문회인양 대답을 강요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재명 후보는 이른바 여배우 미투 의혹을 제기한 김영환 후보를 향해 1차 책임이 있다며 강력한 법적대응 방침을 시사했다.
이로 인해 기호 1번의 맞상대는 기호 2번이 아니라 기호 3번이 되어 가는 형국이다.
그 정확한 속내를 알 수는 없으나. 안철수 후보의 미세먼지 공세와 김영환 후보의 여배우 미투 공세가 민주당의 박원순 후보와 이재명 후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힌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안 후보는 "미세먼지 농도가 박 후보 취임 기간 동안 7.3% 나빠졌다. 팩트"라며 "초미세먼지는 어떻게 되나. 8.7% 나빠졌다. OECD 데이터를 보면 40%가 나빠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후보는) 재임 시절 남 탓을 하고 유체이탈형 화법을 해왔다. 미세먼지 문제도 150억원을 먼지처럼 날린 데 대해 시민이 제안한 것이라고 시민 탓을 했다며 오죽하면 민주당 경선에서 다른 후보들이 '제발 남 탓하는 시장되지 말라'고 지적했겠느냐고 몰아붙였다.
그럼에도 박 시장은 적극적인 해명을 하지 못했다. 팩트 앞에 무너진 것이다.
김 후보의 여배우 미투 의혹 제기는 그 파괴력이 더욱 컸다.
토론회 이후 김영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계속 오르내렸는가하면, 이재명 여배우 스캔들 이라는 글이 하루종일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한 방송에서는 사회자가 "토론회 승자이자 주인공은 김영환 후보였다. 치고 빠지고 다시 세게 먹이고 무하마드 알리가 환생한 줄 알았다" 이런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만일 이런 토론회가 계속 이어질 경우, 현재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는 민주당 후보들의 지지율이 붕괴될지도 모른다. 그걸 우려한 탓에 민주당이 2번인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와 남경필 경기지사 후보보다도 3번인 안철수 후보와 김영환 후보를 호되게 몰아붙이고 있는 것 아닐까?
어쩌면 자당 후보들의 자질검증에 불안감을 느낀 민주당이 네거티브를 구실로 토론회를 보이콧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친문성향의 방송으로 분류되고 있는 JTBC가 오는 6월 4일 예정한 경기지사 후보 토론회와 5일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를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도 불길한 징조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토론회 방송을 더욱 많이 열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JTBC는 오히려 예정된 방송마저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를 양산하는 이번 토론회를 열지 않기로 했다"며 급작스러운 취소통보를 하고 말았다.
감출게 많은 민주당 후보들 입장에서야 어떻게든 깜깜이 선거를 치르고 싶겠지만, 이건 유권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거리낄게 없다면 청문회가 아니다라는 식의 말장난으로 빠져 나갈게 아니라 당당하게 해명하고, 잘못이 있으면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옳다는 판단이다. 토론회는 바로 그런 기회를 부여하는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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