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친문, ‘순혈주의’ 유혹 떨쳐라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18-06-20 11:33:34
편집국장 고하승
6.13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민심이 문재인 정부를 재신임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에 대해선 일단 기쁨을 표명했다.
실제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오후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갚아야 할 외상값이 많다하더라도 우선은 기뻐해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그러나 그것은 오늘까지, 오늘 이 순간까지다. 지난번에 우리가 받았던 높은 지지는 한편으로는 굉장히 두려운 일"이라고 곧바로 채찍을 들었다.
한마디로 "자만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 셈이다.
이날 회의 참석자들은 모두 청와대 관계자들이지만 이 경고는 사실상 청와대가 아니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메시지다.
대체 문 대통령은 무엇을 우려하는 것일까?
사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공천은 낙제점이다. 도덕적으로 흠결이 많은 인사들이 대거 공천을 받았다. 그런데도 ‘문재인 광풍’ 때문에 그들의 흠결이 가려졌고, 그들 대부분이 당선됐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당선된 그들이 향후 지방자치단체 운영과정에서 말썽을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2020년 총선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향후 민주당이 장악한 지방권력과 토호세력의 유착이 문재인 정부에서 드러나면 도덕성을 의심받고 국정운영 동력이 떨어지면서 내년 총선에서 심판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날 조국 민정수석이 “지방선거 승리 이후에 새로 구성될 지방정부의 부정부패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올해 하반기에 지방정부, 또 지방의회를 상대로 감찰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보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마디로 민주당 소속 당선자들에게 ‘비리’에 휩싸이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조국 민정수석은 이날 문 대통령에게 '과거 정부' 국정상황의 교훈을 보고하며 잘못된 점으로 '집권세력 내부 분열'과 '독선'을 첫 번째로 꼽았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 내부에선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문 단일후보’ 논의가 한창이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렸던 인물들이 대거 포진된 '친문' 진영에서는 7선의 이해찬 의원과 4선의 김진표 의원, 3선 윤호중 의원, 재선 전해철 의원이 거론되고 있으며 이들은 물밑에서 당 대표 선거를 작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최재성 의원도 가세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친문 후보 단일화 논의가 결국은 당내 비문 진영과의 갈등을 일으키고, 그게 집권세력 내부 분열로 이뤄질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당내 다수세력인 친문 진영이 ‘우리끼리’라는 모습을 보일 때 그것이야말로 ‘독선’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민주당의 차기 당 대표는 ‘원조 친노’ 인사가 아니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합리적 성향의 인사가 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그런 점에서 취임 1주년을 맞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적임자라는 판단이다.
특히 김부겸 장관은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당대표 적합도 1위에 올랐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16~17일 이틀간 전국 성인남녀 10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차기 민주당 당대표 적합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16.7%가 김부겸 장관을 꼽았다. 4선의 박영선 의원(10.3%), 7선의 이해찬 의원(9.3%)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모두 따돌렸다.
(이 조사는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실시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수준이다. 응답률은 9.6%.)
국민들 역시 김 장관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 김 장관은 자신의 거취에 대해 일체 함구하면서 업무에만 열중하고 있다. 그러나 당이 부르면 그는 기꺼이 그 부름에 응할 것이다. 문제는 당내 다수파인 친노,친문 세력이 당권독점이라는 ‘순혈주의’ 유혹을 떨쳐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어쩌면 문 대통령의 ‘경고’는 자신의 이름을 팔아 당권을 장악하려는 세력들을 향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대통령은 이미 ‘친문의 대표’가 아니라 ‘당의 대표’요, ‘국민의 대표’가 되었다는 사실을 친문인사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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