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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같은 처마밑에 파고들어 바람을 피하며 휘어져버린 그런 소나무 말고 가파른 언덕 밑 낮은 봉분을 품고 선 담담한 소나무 같은 사람을 만났다.
대목이 탐 할 만한 재목은 아닌듯ᆢ
대목 손에 이끌려 가서 궁전의 대들보 위에 선 대공이 되거나 신전의 서까래로 쓸만한 재목은 아니다.
기세좋은 서원의 대들보위에 곧게서서 말없이 기준이 되고, 하늘에 날개를 펼치고 있는 서까래들을 단단히 받치고 선 대공이 될만한 그런 소나무같은 사람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강병인 이고 작업실의 이름은 '술통'이다.
'술술 잘 통하라!'는 뜻이니 오해하지 말라고 서둘러 말은 했지만 "그래도 술 좋아하는건 맞다."고 말 하는 뒷끝을 보니 쎈 '술빨'이 틀림없다.
어쨌든, 술과 인연이 깊은듯 하다.
'화요'라는 술과 '진로 참이슬'을 비롯한 여러 브랜드의 술과 '열라면' 등 소비제품, 드라마 미생과 각종 출판물등의 글씨를 써왔지만 그는 단순히 상업적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는 '캘리그라퍼'가 아니다.
학과 예를 바탕으로 한 '추사파'이고 한글을 경외하는 '세종파'의 대가 쎈 커뮤니케이터이다.
"저는 '추사 김정희' 선생과 '세종대왕'의 제자 입니다. 세대와 시간의 격차가 있지만 그때의 하늘과 땅이 그러하고 사람이 그 가운데 서 있으니 서로 통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사람들은 그를 시대의 욕구에 따라 '캘리그라퍼'로 부른지 오래다.
그러나 그는 그 이름을 궂이 달가워 하지는 않는다. 그 그릇에 담기에는 그의 작업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말을 아무리 잘해도 전해지지 않는 뜻이 있고, 글을 어찌 써도 담아지지 않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떤 말로도 어떤 글자로도 담아지지 않는 '경계의 언어'를 창조해내는 일을 하는 그는 '세종'과 '가우디'를 말했다.
"세종은 우주에서 하늘과 땅과 사람을 해체해 내고 거기서 부터 다시, 사람 속에 내재하는 천,지.인을 불러내 마침내 어린백성을 가르치는 바른글자를 만들었습니다. "
뜬금없는 표정으로 세종대왕은 이해가 가는데 "가우디"는 너무 먼나라 얘기 아닌가? 물었다.
그가 처음으로 속 편한 얼굴로 웃었다.
"1852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의 전설이 된 건축가 '가우디'와 무슨 상관인가 궁금하신 거지요?
저역시 도시의 문자 건축, 문자 조형물로 그 도시의 랜드마크를 만들고 그것이 그 도시를 먹여살리는 문자도시의 상징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 생각들이 아마도 '가우디'의 고민과
만나지 않았을 까요?"
당시의 건축설계 개념이 기하학에 근거한 직선설계가 기본 이었는데 가우디가 그걸 거부하고 곡선설계를 하며 자연을 담아 설계, 시공을 했으니 다 미쳤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그가 지은 최초의 아파트는 딱 두채가 팔렸다.
투자자가 한채를 사고 또 한채를 산 사람은 "가우디 " 본인 뿐 이었다.
"동병상련 인가? " 물었다.
강병인도 수 년전부터 남들 안하는 일을 해 왔고, 그 역시 거부 당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광화문에 걸 수있는 한글예시현판을 제작했다.
그의 뜻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의기와 열정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지만 박수로 단단한 벽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우리 역사 중 가장 빛나는 대역사, 한글이태어난 집현전의 표지석 하나도 못세우는 부끄러움을 안고 있습니다.
더구나 집현전 입구인 광화문에 떡하니 한문 현판만 걸려 있는게 안타까워서
세종이 만든 한글체 그대로 "광화문"
예시현판을 제작 했었지요. 결국 제 작업실에 걸려 있지만 말로만 하는것과 실제 현물을 제작 했을때와는 많이 달랐어요."
그의 안타까움이 결국 때를 만들었다.
2026년 현재, 문화부가 광화문에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체로 병기를 결정하고 방식에 대해 공청 중이다.
그는 살아있는 글자를 생산한다. 쓰는것도 그리는 것도 아닌, 그 것 들은 누군가 바라 볼 때마다 '쑤욱 쑥' 자란다.
특히 그가 쓴 '꿈', '꽃', '봄', '웃자', '말' 등을 만나보면 누구나 그 글자와 '유쾌한 수다'를 떨게 된다.
"이제 대중소통언어 로서의 역할을 하는 작품들을 도심 곳곳에서 발견하게 될겁니다. 단순한 사인물이 아니라 도시가 대중과 소통하는 코드가 될겁니다. 그것이 진지한 공공예술의 가치 임을 제가 증명하려 합니다."
그의 말대로 멀지않은 미래에 그의 작품들을 통해 '문화도시서울'이 말을 걸어 올듯하다.
전세계에서 '바르세로나'로 몰려가는 관광객들을 보며 도시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부러워 했던 그는 서울이 세계의 문화자산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의 열정을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이제, 붓을들어 먹을 풀기에는 캔바스가 너무 좁다는 뜻인가?
강병인은 경상도 산골에서 태어나 가난에 등떠밀려 성남까지 왔고 검정고시를 거쳐 늦깍이 공부를 통해 홍익대 대학원까지 마쳤다.천형처럼 주어진 가난의 '트라우마'를 벗어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리엔트 시계공장에서 일할때, 학력고사 시험 때문에 퇴사를 했다가 회사 기숙사로 다시 뛰쳐 들어간 아린기억이 있어요. 오래 굶어서 황달이 오고 죽을뻔 했거든요."
도가를 논하고 주역을 말하며 수직으로 세운 붓의 각도와 '일필휘지'를 토해내는 폼새로 보아 부자집 "책상물림"일 것이라 짐작하고 '뉘집자식'인가를 넌즈시 파봤다가 굶어서 황달끼로 죽을뻔 했다는 말을듣고 짠 한 마음에 그날, 만만치 않은 한정식 식사비를 내가 냈다.
가난에도, 박복에도 비빌언덕 하나 없음에도 굴복치 않는 그가 지금, 세종대왕이 준 한글자산과 추사의 가르침인 학과 예를 갖춘 도를 말했다.
이어서 세계적인 예술의 도시 바르셀로나를 능가하는 '예술도시선언'을 토해냈다.
그의 말처럼 말로도 글자로도 다 전해지지않는 경계면의 언어로 그가 도달할 수 있는 곳이 과연 어디까지 일까?
문자로 "세계문화도시!"를 꿈꾸는 21세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강병인에게 조언했다.
"너무 몰빵하지 마요. 가우디의 마지막을 아시지요?"
"옙, 옷 잘 입고 다니겠 습니다."(가우디는 전차에 치어 쓰러졌다. 그러나 남루한 차림새 때문에 걸인으로 오인되어 치료조차 못받고 거리에서 자기별로 돌아갔다.)
베토벤의 이미지를 닮은 그의 형상에 화들짝 웃는 모습이 경쾌하게 코믹하다.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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