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고하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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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느닷없이 “정청래와 대표와는 입장 다르다”라며 야당과의 대화를 강조했다.
물론 대통령으로서 협치의 필요성을 강조한 말이지만 굳이 정청래 대표를 ‘콕’ 짚어야 했을까?
실제로 미국과 일본을 순방 중인 이 대통령은 24일 일본 하네다 공항을 떠나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DC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반탄파가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되더라도 야당과 대화를 하겠다는 생각은 유효한가'라는 질문에 "공식적인 야당의 대표가 법적 절차를 거쳐 선출되면 당연히 대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여기까지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곧바로 "탄핵에 반대하는 지도 그룹, 그야말로 내란에 동조한 것 같은 정치인 지도 그룹이 형성되면 용인할 것이냐는 질문 아닌가"라며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그런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참 어려운 문제"라고 굳이 정 대표를 언급하지 않아도 될 부분에 ‘정청래’를 언급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특히 이 대통령은 "여당 대표인 정 대표의 입장과 대통령의 입장은 다르다"라며 "저는 여당의 도움을 받아 여당의 입장을 갖고 대선에서 이겼지만, 당선돼 국정을 맡는 순간부터 여당이 아닌 국민을 대표해야 한다"라고 정 대표와의 차이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했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그러면서 "물론 여당과 조금 더 가깝긴 하지만 야당을 배제해서는 안 되는 게 당연하다. 힘들더라도 야당과 대화는 당연히 해야 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정 대표가 '악수는 사람과 한다'라며 국민의힘 인사들과는 악수조차 거부하는 것과 너무도 결이 다르다.
이 대통령이 굳이 “이재명과 정청래는 다르다”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경 일변도의 정청래 대표가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50%대로 ‘뚝’ 덜어진 것으로 나오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협치를 거부하는 정청래 대표의 행보와도 무관치 않다는 단판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3주 만에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50%대 초반대에 머무른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25일 나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8∼22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해 '잘함'이라고 평가한 응답자는 51.4%로 나타났다.
이는 전주 대비 0.3%p 상승한 수치다. 오른 게 겨우 이 정도다.
반면 '잘못함'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44.9%로 전주 대비 0.4%p 올랐다. 부정 평가 역시 소폭 상승한 것이다. '잘 모름'은 3.7%로 집계됐다.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2.2%p이고 응답률은 5.1%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물론 이 대통령은 지지율이 하락추세인 것에 대해 "정치라고 하는 게 어떤 표현, 포장 이런 걸 잘해서 일시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물론 의미 있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좀 더 나은 나라로 바뀌고 대한민국에 터 잡아 살아가는 우리 국민의 삶의 조건이 더 개선돼야 진짜 좋아지는 것 아니냐"라면서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하지만 지지율이 40%대로 떨어지면 조기 레임덕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날 것이란 점을 알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순 없을 것이다.
특히 정청래 대표가 먼저 자신과 차별화 전략을 들고나오면 이 대통령으로선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먼저 “정청래와 대표와는 입장 다르다”라며 견제구를 날렸을 것이다. 조국 사면 역시 정청래 견제용이라는 소리가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다.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는 “조국 사면은 본래 크리스마스 사면을 생각했다가 정청래 대표가 너무 치고 나가니까 견제할 필요가 있어서 당겨졌다는 이야기가 많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정청래를 견제하려다 지지율을 엄청나게 깎아 먹은 셈이다. 어쩌면 이재명 정권은 국민의힘에 의해 무너지는 게 아니라 이재명-정청래 갈등 때문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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