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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텃밭인 부산에서만 내리 3번이나 금배지를 달았던 하태경 의원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서울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미 필자는 일찌감치 공천에 불안을 느낀 그가 수도권 출마 선언으로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사실 그는 텃밭에서만 3번이나 공천을 받아 금배지를 거저 주워 먹다시피 한 운이 좋은 정치인이었다.
내년 총선 때에도 그는 손쉬운 자신의 지역구에서 출마하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 지도부가 한 달 전에 그에게 서울 출마를 요청했으나 그는 거절했었다. 하지만 유승민계로 낙인 찍힌 그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당 지도부의 요청을 거절할 때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것이고, 공천은 물 건너갈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그의 서울 출마 선언을 "선당후사라기보다는 제 살길 찾는 것"이라고 혹평한 것은 그런 연유다.
실제로 홍 시장은 8일 소통채널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부산 해운대갑에서 3선을 한 하태경 의원이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서울로 지역구를 옮긴다고 한다. 좋아 보인다"고 하자 이같이 평가절하했다.
한마디로 당이 수도권 험지 출마를 권유한 것도 있겠지만 부산에 남아 있으면 공천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하 의원 나름의 살길을 찾는 것 뿐이기에 의미를 크게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하태경 의원은 이에 대해 “혹자는 (부산에서) 공천이 안 되니까 서울 출마로 선수 친 것 아니냐는데, 그런 생각이었다면 더 일찍 서울에서 활동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코미디다.
세상에 어느 현역 의원이 미리 자신은 공천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하고 공천받기 쉬운 지역구로 옮기는가. 모두 자신은 공천받을 것이라 여기고 자리를 지키려 발버둥 치다가 막판에 포기하고 지역구를 옮기는 게 일반적인 모습 아니겠는가.
하태경 의원의 선택 역시 그런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사실 그는 이미 유승민, 이준석 등과 함께 국민의힘 당원들은 물론 지지층으로부터도 눈 밖에 난 사람이다.
그의 정치 역정은 늘 유승민 이준석과 함께였다.
그들과 함께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바른정당 창당대열에 합류했다. 이후 대선 정국에서 바른정당 대다수 현역 의원들이 자유한국당에 합류했지만, 그들은 끝까지 버티며 유승민을 대선 후보로 내세웠다. 하지만 대선에서 유승민 후보가 형편없는 지지율로 낙선하자 당은 해체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하태경은 유승민 이준석 등과 함께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합당을 추진했고, 바른미래당을 창당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자신은 전당대회에 출마했으나 손학규에게 패해 수석 최고위원이 됐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유승민 이준석 등과 함께 손학규 대표를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손학규의 완강한 저항에 쿠데타는 결국 실패했다.
그러자 그는 유승민 이준석 등과 함께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보수당 출신들은 뼛속까지 유승민계라 할만하다. 여당 텃밭인 강남권 송파갑에서 손쉽게 금배지를 단 김웅 의원 역시 새로운보수당 출신이다.
그런 그에게 국민의힘 지도부가 여당 텃밭에 공천을 줄 리 만무하다.
그걸 알고 일찌감치 서울 출마 선언으로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다만 그는 자신의 선택을 ‘제 살길’이 아닌 ‘결단’이나 ‘선당후사’로 포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전히 여당 텃밭인 자신의 지역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버티는 서울 송파갑 김웅 의원 등 다른 유승민 계 의원들보다는 두뇌 회전이 조금 빠른 편인 것 같다.
덕분에 하태경 의원은 친윤 핵심으로 부상한 박수영 의원으로부터 "총선 승리만이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 길임에 스스로 내려놓은 하 의원의 큰마음을 존경한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하 의원이 내린 결단은 우리 당에 앞으로 공천과 선거와 관련해 새로운 희망, 우리 당의 혁신 의지를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아무튼 ‘새로운보수당’계는 물론 영남권과 강남권에서 손쉽게 금배지를 달아온 현역 의원들의 ‘험지 출마’ 선언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하태경 의원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그마저 폄훼할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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