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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국민께 약속한 바 있다"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깊은 논의 끝에 배임죄 폐지 결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임죄 폐지는 재계의 오랜 숙원"이라고 강조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웃음보가 ’빵‘ 터졌다.
아마도 민주당이 정말로 ’재계의 숙원‘을 해소하기 위해 배임죄 폐지를 결단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동안 재계가 반대하는 것을 일방 처리해왔던 정당이 바로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재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앞서 소액주주 권한을 강화하는 1, 2차 상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경제 8단체가 틈만 나면 국회로 가 민주당 지도부를 만나고 대통령실 수뇌부를 만나 "이 법만큼은 안 된다"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고 한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10여 차례나 그렇게 했지만 민주당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재명 대통령이 재계 총수와 경제단체장들을 만났을 때 류진 한국경제인협회장이 어렵사리 용기를 내 '노란봉투법을 거두어 주십사'하고 대통령에게 요청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이렇듯 재계의 요청을 무참히 짓밟았던 정권이 갑자기 ’재계의 숙원‘ 운운하며 배임죄를 폐지한다고 설쳐대니 웃음보가 터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배임죄를 폐지하려는 진짜 속셈은 무엇일까?
국민의힘에선 '이재명 대통령 무죄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대통령이 받고 있는 재판 5개 중 2개가 배임죄와 관련이 있어서다.
실제로 이 대통령이 받게 된 ▲제20대 대선 허위사실 공표 ▲검사 사칭 사건 위증교사 ▲대장동·백현동 등 개발비리 및 성남FC 불법후원금 ▲쌍방울 대북송금 ▲법인카드 사적유용 등 5개 재판 가운데 2개가 배임죄와 관련이 있다.
대장동·백현동 등 개발비리 및 성남FC 불법후원금 사건에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가 적용됐고, 법인카드 사적유용 사건에선 업무상 배임 혐의가 적용됐다. 법조계에선 배임죄가 전부 폐지될 경우 형사소송법 제326조에 의해 진행 중이던 재판은 '면소'(免訴) 판결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면 처벌 필요가 사라져 법원이 소송을 종결해야만 한다. 특히 면소 판결이 나게 되면 기판력(일사부재리)에 따라 동일 사건에 대해서는 다시 재판을 받지 않는다.
야당의 이런 의심은 민주당이 이재명 정부 출범 100일간 주로 띄웠던 이슈 중 상당수가 이 대통령 사법리스크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 근거한다.
실제로 민주당이 입법권으로 이 대통령의 재판과 관련해 영향을 줄 수 있는 행태를 보인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 대통령이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된 공직선거법 재판과 관련, 민주당은 공직선거법 상 허위사실 공표죄 요건 중 '행위'를 삭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대법원의 유죄취지 파기환송 이후인 지난 5월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됐다. 이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국무회의에서 공포되면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재판도 면소 판결로 종결된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공직선거법 사건과 관련해 이 대통령과 관련된 선거법의 해당 조항을 삭제하려는 것이나 이 대통령이 재판 중인 배임죄를 폐지하려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모두 '이재명 무죄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말이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죄를 부인하는 죄인은 봤어도, 법을 폐지하는 죄인은 처음”이라고 꼬집은 것은 그런 연유다.
정말 민주당이 재계의 숙원을 들어주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지금 국회가 논의해야 할 것은 배임죄 폐지가 아니다. 민주당이 재계의 요청을 외면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노란봉투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합리적 개선을 위한 논의가 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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