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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메스'를 들겠다고 나섰다가 느닷없이 혁신위원장직을 던지고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의원의 행보에 대해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선 ‘역시나’ 하며 예상했던 일이 터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고작 한 달 남짓한 임기의 혁신위원장직을 맡을 때부터 안 의원이 끝까지 임기를 마칠 것이라고 본 정치부 기자들은 몇 안 된다. 정말 손꼽을 정도다.
혁신위를 구성하고 조금 논의하는 척하다가 당 지도부가 수용을 거부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혁신위원장직을 사퇴하고 내가 직접 당 대표가 되어 혁신을 주도하겠다며 전대 출마를 선언할 것이란 관측이 대세였다.
실제로 상당수 언론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관련 기사를 쓰면서 안철수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사실 혁신위원장직을 맡았기 때문에 그가 전대에 출마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많은 언론은 그가 자신이 만든 혁신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혁신위원장직을 내던지고 그걸 명분으로 전대에 출마할 것이라는 예측기사를 쏟아냈다.
아니나 다를까.
정치부 기자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빗나간 것이 있다면 당 지도부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혁신안을 만들고 난 후에 그걸 명분으로 사퇴 후 전대 출마를 선언할 것이란 점이다.
실제로 안 의원은 혁신안을 논의하기는커녕 이제 막 혁신위 구성안을 발표하는 날 느닷없이 혁신위원장 사퇴를 선언하고 말았다.
아무리 전대 출마가 급하다고 해도 이건 그냥 코미디다.
결과적으로 혁신위가 출범도 하기 전에, 그러니까 어떤 혁신안이 만들어질지 아직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혁신안을 비대위가 수용하지 않아 사퇴했다는 건데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설사 그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특정인을 인적청산 대상으로 삼았다고 해도 최소한 혁신위 내에서 논의하는 척이라도 했어야 옳았다. 그런 다음에 그걸 명분으로 혁신위원장직을 사퇴하고 전대 출마를 선언했다면 지지를 받을 수도 있었지 모른다.
그런데 친한 계 조경태 의원의 출마 선언을 보고 마음이 급해졌다. 조 의원의 출마는 사실상 한동훈 전 대표가 출마하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로 해석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한동훈의 자리를 자신이 대신 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 성급하게 혁신위원장 자리를 내던지다 보니 일이 꼬여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안 의원은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당내 제반 세력이 그의 행태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가 한동훈의 자리를 대신하는 꿈을 꾸고 있지만, 친한 계 박정훈 의원은 페이스북에 "혁신위원장 인선으로 스포트라이트를 실컷 즐긴 뒤 이제 와서 '친윤(친윤석열)이 인적청산을 거부해 그만두고 당 대표 나간다'고 하면 그 진정성을 누가 믿어주겠느냐"며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는 '안철수식 철수 정치', 이젠 정말 그만 보고 싶다"고 질타했다.
당의 주류로 꼽히는 TK 출신 중진 의원도 "결국 혁신위를 던진 다음 스텝이 '전당대회' 아니냐"며 "좋게 볼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결과적으로 안 의원의 얄팍한 ‘잔꾀’가 약이 아니라 모든 세력으로부터 배척당하는 독이 되어 버린 셈이다.
사실 안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탄핵 반대파인 김문수 후보를 끝까지 도왔고,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의 단일화 조율도 시도하는 등 계파를 넘는 중재자로 기대를 받았다. 선거 이후에는 '쇄신'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상황 속에서 당내 주류 세력이 그를 김문수 대안으로 눈여겨볼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잔꾀’가 이런 기대감과 신뢰를 모두 무너뜨리고 말았다. ‘왕따 안철수’, ‘또 철수’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떼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린 셈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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