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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가 출산의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 헬기에 몸을 싣고 사투를 벌이는 참담한 현실이 반복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최근 경기 안성에 거주하는 임신 35주 차 고위험 산모가 한밤중 조기 양막 파수라는 응급 상황에 부닥쳤으나, 무려 25곳의 병원으로부터 수용을 거절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출동한 119구급대원은 조산 및 태아 감염 위험이 높다고 판단해 서울과 경기, 충청 등 수도권 및 인근 병원 25곳에 문의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모두 ‘수용 불가’였다.
산부인과 당직 전문의가 없거나 신생아 병상이 부족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으며, 심지어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를 운영하는 병원들마저 고개를 저었다. 결국 이 산모는 119 신고 후 3시간여를 길거리에서 허비한 끝에 소방 헬기를 타고 150km나 떨어진 전북 전주예수병원으로 이송되었고, 6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제왕절개 수술로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다. 하마터면 산모와 태아 모두의 생명이 위태로울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더욱 참담하고 분노를 자아내는 것은 생명을 위협받는 임산부의 ‘응급실 뺑뺑이’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월 대구에서 임신 28주 차 쌍둥이 산모가 병원을 찾지 못해 4시간을 헤매다 쌍둥이 중 한 명을 잃고 다른 한 명은 뇌 손상을 입는 비극이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응급환자 이송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굳게 약속했으나, 불과 석 달 뒤인 5월 충북 청주에서 임신 29주 차 산모가 41곳의 병원에 문의한 끝에 부산까지 이송되어 끝내 태아가 숨지는 안타까운 사태가 또다시 발생했다. 의료 인프라가 가장 집중된 수도권에서조차 응급 산모 하나 제때 받아줄 병원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필수 의료 체계와 모자 의료 안전망이 얼마나 처참하게 붕괴하였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실제로 지난해 경북 지역 산모의 45%가 타 시·도에서 원정 출산을 했다는 통계는 붕괴된 분만 인프라가 이미 전국적인 재난 수준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비극의 근본적인 원인은 분만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의 구조적 붕괴에 기인한다. 현재 전국 1,500여 곳의 산부인과 병의원 중 실제 아이를 받아주는 곳은 단 260곳에 불과하다. 24시간 분만실을 운영하는 데 막대한 고정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출산 과정에서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짊어져야 할 배상 책임이 지나치게 무겁기 때문이다.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의료가 의사들의 기피 분야로 전락하고 지방 의료시스템이 무너지는 현실을 방치한 채로는 그 어떤 저출생 대책도 공허한 외침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중증 응급환자의 이송 병원이 신속히 정해지지 않을 경우 상황실이 우선 수용병원을 지정할 수 있게 하고, 중대한 과실이 없는 응급의료 행위에 대해 형사상 책임을 면제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아울러 시·도지사가 지역 이송 체계를 의무적으로 수립하고 실시간 수용 능력 확인 시스템을 강화한 것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법적 강제와 이송 체계 개편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의료진과 병상의 근본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는 ‘응급 처방’에 불과하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현행 정부 지원 시스템의 맹점이다. 이번에 산모 수용을 거부한 병원 중 다수는 정부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는 의료기관이었다. 보건복지부는 24시간 산모 및 신생아 통합치료 기반 강화를 명목으로 국비와 지방비를 투입해 지역 모자의료센터 등에 당직 전문의 운영비를 지원해 왔으며, 경기도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8곳의 지원 대상 병원이 집중되어 있다. 막대한 혈세를 투입하고도 정작 응급 상황에서 당직 의사 부재나 병상 부족을 이유로 수용을 거부당한다면, 이는 정책의 심각한 실패다.
정부와 지자체는 단순한 예산 집행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지원금의 실제 쓰임새와 야간 및 공휴일 당직 체계의 실효성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병원에 대해서는 엄중한 평가와 함께 페널티를 부과하는 등 강력한 사후 관리 매뉴얼을 도입해야 마땅하다. 돈만 주면 필수의료가 살아날 것이라는 안이한 인식에서 벗어나, 예산이 실제 24시간 현장 대응 능력으로 이어지는지 엄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또한, 현장 구급대가 병원마다 일일이 전화를 걸어 수용 여부를 구걸하듯 타진하며 수백 킬로미터를 헤매고 길거리에서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원시적인 이송 시스템도 시급히 개편되어야 한다. 정부가 저출생 극복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아이를 낳으려는 산모가 안심하고 갈 병원조차 없는 현실을 방치한다면 육아휴직 확대나 현금성 대책은 모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자 허사일 뿐이다.
모처럼 살아나고 있는 출산 의지가 꺾이지 않으려면, 권역별 24시간 분만 의료진과 신생아 집중 치료 병상을 대폭 확충하는 것이 급선무다. 나아가 병원이 분만실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필수 고정비용을 파격적으로 지원하고,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따른 부담을 국가가 실질적으로 분담하는 굳건한 안전망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임산부가 대한민국 어느 지역에서든 안심하고 새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필수의료 환경 구축이야말로, 국가가 지체 없이 완수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책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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