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세월을 버틴 숨은 영웅들께 감사를

    기고 / 시민일보 / 2026-06-22 15: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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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이천호국원 관리과 이진희



    6·25 전쟁에 참전한 어느 청년이 있었다. 그는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이며, 아버지였다. 우리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아픈 역사로 기록될 그 전쟁 한가운데에 그가 있었다. 청년의 바로 옆으로 총알이 날아오고 포탄이 터졌다. 터진 포탄의 파편이 청년의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끔찍한 상처를 입고 쓰러진 청년은 군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부상을 치료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인명을 포기한다는 것은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든 비극이지만, 당시에는 너무도 흔한 일이었다.

    가족에게 청년의 상태가 전달되었다. 남편이 곧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군병원으로 찾아간 아내는 참혹한 상태의 가장을 발견했다. 남편은 쓰러진 상태 그대로 병상에 누워 있었고 가슴에는 파편에 맞은 상처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남편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반쯤 굳어진 피가 아내의 손바닥 사이로 후두둑 떨어졌다.

    이것은 실제 전몰군경 배우자의 진술서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6년 전, 사망한 전몰군경 배우자의 보상금과 유족권리를 정리하는 업무를 할 때, 우연히 이 진술서를 읽게 됐다. 남편을 잃고 유족 보상금으로 생계를 연명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기록 사이에 있었던, 두어 장짜리 진술서에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심경이 꼭꼭 눌러 담겨 있었다. 업무를 다 처리하고 몇 년이 지나고서도, 오랫동안 이 진술서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분의 아픔과 서러움이 생생하게 전달된 까닭이었다. 아내의 손에 닿은 남편의 상처는 따뜻했을까, 차가웠을까. 그대로 죽어간 가장을 기억하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켰을까. 참혹한 상처를 드러낸 채로 떠난 남편의 모습을 아내는 죽기 전에는 잊을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들이 한동안 계속 떠올랐다.

    6·25 전쟁은 올해로 76주년을 맞이했다. 강산이 일곱 번 넘게 바뀌며, 전쟁의 기억은 희미해졌고, 상처는 꽤 아문 듯 보인다. 과거 전후의 대한민국이 어땠는지는 이제 오래된 사진이나 기록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그 자료들로 확인할 수 있는 70여 년 전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절망 그 자체였다. 3년 넘게 이어진 전쟁으로 국토의 80%가 황폐화되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에 불과했고, 이는 전 세계에서 최빈국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쟁의 가장 극적인 승리를 이끈 UN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가 재건되는 데는 최소 100년이 걸릴 것이다.”

    76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모습은 단순히 재건을 이야기하는 시점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1953년의 대한민국과 지금의 대한민국이 얼마나 다른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고, 외국 기업의 수장들과 정치적 지도자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일도 잦아졌다. 한국의 식품이나 화장품 등의 제품뿐 아니라 영화, 음악 등의 콘텐츠가 유명해진 것은 이제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67달러에 불과하던 국민소득은 이제 3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전쟁이 남긴 상처는 희미해졌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당시 전쟁 중에 다치거나, 사망한 사람, 행방불명된 사람이 있는 가정은 우리 국민의 반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절반이 넘는 국민들이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공유하며 70년 넘게 살아온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의 풍요를 말할 때 가장 큰 역할을 한 이들로 위대한 지도자, 기업가 그리고 많은 산업을 이끌었던 역군 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금의 찬란한 역사 뒤편에는, 다친 몸을 이끌고 가장의 무게를 견뎌야 했던 참전유공자들과, 남편을 여읜 슬픔을 삼킬 새도 없이 어린 자녀와 늙은 부모를 부둥켜안고 차디찬 땅에서 맨손으로 흙을 일궈야 했던 전몰 배우자들의 처절한 헌신이 있었다. 그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식을 먹이고, 가르치고, 결혼시켰다. 자녀들을 우리나라의 국민으로 키워냈으며 또 다른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냈다. 패배감보다는 책임감으로 무장했던 전후 세대,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멈추지 않았기에 오늘의 우리가 이어져 왔다.

    우리는 이렇게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산 유공자들 그리고 유족들의 헌신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분의 진술서 내용을 꺼내 감히 이곳에 적은 것은,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 한 숨은 영웅들의 존재를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6·25전쟁 76주년을 맞아, 큰 가르침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신 전몰군경 배우자분께 마음으로 감사를 전한다. 삶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오늘의 우리를 만들어 주셨다고, 슬픔을 견디고 부지런히 일하신 덕에 이 땅에 평화와 번영이 오게 되었다고 인사드리고 싶다. 비록 이곳에서는 죽어가는 남편의 부상을 치료하지 못했지만, 그곳에서는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영면하시길 기도해 본다.

    감사합니다, 그 힘든 세월을 버텨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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