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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북부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다 보면 ‘수도권’이라는 말이 가끔 낯설게 느껴진다. 지도상으로는 분명 수도권이다. 하지만 경기도 주관 스타트업 지원사업 발표평가가 오전 9시에 판교에서 열린다는 안내를 받는 순간, 그 말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발표는 9시에 시작되지만, 발표자는 9시에 도착해서는 안 된다. 자료를 확인하고, 접수하고, 대기하고,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경기북부에서 출발하는 발표자에게 오전 9시 평가는 새벽 6시부터 시작된다. 차를 끌고 가도 문제다. 출근길 정체를 피하려면 남들보다 더 일찍 움직여야 한다. 막히는 길을 뚫고 판교로 향하다 보면, 같은 경기도 안에서도 기업이 기회를 만나는 거리가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실감하게 된다.
2주 전에는 또 다른 행사 때문에 수원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의정부에서 수원역까지는 같은 1호선으로 연결돼 있지만,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중간에 한 번 갈아타 서동탄행 열차를 타야 했고, 수원역에 도착하기까지 약 2시간이 걸렸다. 거기서 다시 버스나 택시를 타고 행사장으로 이동해야 했다. 집을 나선 지 거의 3시간이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기도의 AI·IT 스타트업 행사는 주로 판교, 성남, 수원에서 열린다. 지원사업 설명회와 발표평가, 네트워킹 행사, 투자 관련 프로그램도 대부분 경기남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물론 경기북부 기업도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참여할 수 있다’는 말과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말은 다르다. 누군가는 가까운 곳에서 기회를 만나지만, 경기북부 스타트업은 새벽부터 이동해야 겨우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다.
최근 필자가 운영하는 회사는 경기도 AI 혁신클러스터 의정부 입주기업으로 선정됐다.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AI 클러스터팀이 추진한 사업으로, 입주기업에는 임대료 무료 공간이 제공된다. 모집 지역은 성남 피지컬 AI 랩, 판교 AI 클러스터, 부천 AI 클러스터, 시흥 AI 클러스터, 의정부 AI 클러스터 등 5곳이었다. PT 심사까지 거쳐 입주가 확정됐고, 경기북부에도 AI 기업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이후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성남과 판교는 추가 모집 없이 수요가 채워진 반면, 부천·시흥·의정부는 추가 모집 공고가 다시 올라왔다. 임대료가 무료인데도 일부 지역은 기업 모집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 차이는 단순히 공간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은 결국 생태계를 따라 움직인다. 투자자와 개발자, 협력사와 네트워크가 가까운 곳으로 향한다. 판교는 이미 그 조건을 갖췄지만, 의정부를 비롯한 경기북부는 아직 스타트업 생태계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생태계의 격차가 지원 제도 안에서도 드러난다는 점이다. 많은 창업 지원사업과 지역균형발전 제도는 비수도권 기업을 우대한다. 지방 창업 활성화를 위해 가점이나 특례를 주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경기북부는 수도권으로 묶여 이런 혜택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경기남부처럼 판교·성남·수원 중심의 산업 인프라를 누리는 것도 아니다. 북부 스타트업은 비수도권 우대 정책에서도 벗어나 있고, 남부의 생태계와도 멀리 떨어져 있다.
결국 경기북부 스타트업은 이상한 위치에 놓인다. 수도권 규제는 받지만, 수도권의 기회는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 지방 균형발전 혜택은 받기 어렵지만, 산업 기반과 기업 생태계만 놓고 보면 비수도권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도 있다. 스타트업이 지역에 자리 잡아야 청년 일자리가 생기고, 기업 활동이 늘어나야 지자체의 재정 여건도 나아질 수 있다.
숫자도 이를 보여준다. 2023년 기준 경기도 지역내총생산(GRDP)은 경기남부가 488조원으로 전체의 82.2%를 차지한 반면, 경기북부는 106조원으로 17.8%에 그쳤다. 같은 경기도 안에서도 경제 규모 차이가 압도적으로 벌어져 있는 셈이다. 연천·동두천·가평 등 GRDP 하위권 역시 대부분 북부 지역이다.
그런데도 경기북부는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각종 규제를 동일하게 적용받는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공장총량제와 권역별 입지 규제는 기업 유치와 산업 확장에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여기에 접경지역이라는 특수성도 더해진다. 일부 지역은 군사시설 보호구역과 환경 규제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 드론 산업도 마찬가지다. 경기북부는 접경지역과 군사 규제의 영향이 큰 만큼 드론 실증과 산업 육성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제 경기북부에도 스타트업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북부 기업을 위한 별도 가점, 창업 지원사업의 권역별 균형 배분, 경기북부 전용 IR·네트워킹, AI·드론·방산·콘텐츠 등 북부 특화 산업 지원이 필요하다. 경기도 주관 행사와 지원기관 역시 남부 중심에서 벗어나 북부 현장으로 더 자주 와야 한다. 경기북부에 필요한 것은 특별대우가 아니라, 실제 조건을 반영한 공정한 기준이다.
경기북부의 문제는 단순한 지역 민원이 아니다. 대한민국 균형발전 정책의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사례다. 진짜 균형발전은 지도 위 선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산업 구조와 경제 여건,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이제는 경기북부도 균형발전 논의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경기북부 스타트업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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