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재의 여세추이(與世推移)] 추락하는 것은 ‘혐오’라는 날개가 있다

    인터넷 이슈 / 온라인 이슈팀 / 2019-02-04 22: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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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버 ‘윾튜브’와 만화가 ‘카광’이 불미스러운 과거 발언에 대한 사과문을 남겼다. 두 사람 모두 사이버 공간을 통해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지만, 그들이 걸어온 ‘혐오’의 발자국은 자신이 쌓아온 공든 탑을 한순간에 무너트렸다.

    ‘윾튜브’의 경우 정치, 사회,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반발을 주 콘텐츠로 삼으며 급격하게 성장했으며, ‘카광’ 또한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를 통해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을 위한 만화를 발판삼아 '혼밥 티셔츠'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 주최자로 누리꾼들의 큰 호응을 얻은 후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독특한 사회 실험으로 팬덤을 만들었다.

    이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높은 인지도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사회 이슈에 대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사이버 공간상의 이용자들이 지지하는 견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윾튜브’는 ‘디시인사이드’에서 ‘풍동’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던 당시의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세월호 희생자 비하와 피겨여왕 김연아에 대한 모독·천안함 전사자들에 대한 조롱 발언은 일반 대중은 물론 ‘윾튜브’의 팬덤에게도 놀라움을 안겼다. 이후 ‘윾튜브’와 만난 일화를 밝히며 눈길을 끌었던 ‘카광’ 또한 ‘코갤 광수’라는 닉네임으로 ‘디시인사이드’에서 활동하며 패륜적 발언과 몸캠 중계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익명성을 방패로 말초적인 재미를 위해 ‘혐오’라는 수단을 선택한 두 사람은 ‘자신의 과거’가 ‘현재의 자신’을 몰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 이들이 지탄받게 이유에는 지금까지 그들이 다뤄왔던 콘텐츠에 담긴 혐오 감정의 기저가 적나라하게 공개된 것 또한 한 몫 했다.

    ‘혐오’를 수단으로 삼는 행동은 상당히 오래 지속되어 왔다. 이는 비단 ‘온라인’으로 칭해지는 사이버 공간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지칭되는 현실 사회에서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숨 쉬고 발 내디디고 있는 현실 사회에서 ‘혐오’는 나와 다른 이들에게 붙이는 ‘꼬리표’이자 ‘계급표’로서 사용됐다. 공고한 신분제를 유지하는 체제나, 계급·계층 간 경제적 괴리가 심각할 정도로 양극화 된 경우 기득권은 자신의 이익을 확고히 다지고, 효과적인 사회 통제 도구로서 혐오를 사용했다.

    이와 같은 ‘혐오’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혐오 정서는 나치 독일의 국민들에게 깊숙하게 퍼져 유대인·장애인·동성애자 등 소수자들을 향한 탄압으로 이어졌다. 이는 역사상 인류에게 가장 큰 상흔을 남긴 혐오 행위로 지금까지 회자하고 있다.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는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혐오’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수십 년간 지속되고 있는 ‘지역 감정’과 함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는 아직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간베스트’와 ‘워마드’로 대표되는 남녀갈등과 남성·여성 혐오는 서로 간의 깊은 골을 만들고 있다.

    오랜 시간 사람들은 ‘혐오’와 불가분의 관계로 지내왔다. ‘혐오’는 성별·인종·종교·국적이 다른 이들에게 우위를 차지하려는 ‘계급표’로서, 또한 ‘마녀사냥’과 같이 이해할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에 대한 ‘꼬리표’로 사용됐다. 이는 민족·종교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에서 ‘무슬림 혐오’와 함께 ‘난민 혐오’가 지속되며, ‘혐오’를 넘어 ‘증오’로 이어지는 악순환에서 볼 수 있듯 심각성은 더욱 크게 대두되고 있다. 더군다나 현대인들의 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이버 공간은 익명성을 담보로 ‘혐오’ 발언이 만연하기 쉬운 환경이기에 대중들의 경각심 또한 제고되는 상황이다.

    유튜버 ‘윾튜브’와 만화가 ‘카광’의 사례는 끝이 아닌 시작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혐오’라는 감정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나올 기회만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혐오’를 통제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경계하고, ‘혐오’를 수단으로 부와 권력·인기를 얻으려는 세력을 견제해야 한다. ‘혐오’를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언젠가는 그 칼날이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혐오’는 무기가 될 수 없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이윽고 가해자로 돌변할 뿐이다.

    * 사진 출처 : 영화 '쉰들러 리스트' 화면 캡쳐

    [ 사회문화평론가 지승재 : 뉴스위즈 컨텐츠 디렉터 / 아시아브랜드연구소 부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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