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북부에 있는 영주, 봉화, 예천, 안동 등의 도시들은 유서 깊은 전통을 간직한 선비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특히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있어 유교문화의 중심으로 꼽히는 영주는 중요한 문화 유산인 불교문화의 보고 ‘부석사’로 문화유산과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고장으로 가는 곳마다 역사의 숨결이 묻어나 경북 북부 관광의 요람이 되고 있다.
춘천과 대구를 잇는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우람한 산세와 때묻지 않는 주위 경관을 즐기며 달려가다 풍기 IC로 빠지면 영주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소수서원을 만나게 된다.
소수서원은 조선 최초의 서원이자 국가의 인정을 받은 첫 사액서원이다.
서원은 선현을 배향하고 교육하는 조선조 사립 교육기관으로 선현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 학문을 배우고 논하는 강학당, 학생들이 기숙하는 재(齋)가 기본 시설이다. 소수서원은 1543년(중종 36년)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흠모하던 회헌 안향의 사당을 숙수사지에 세우면서 시작됐다.
초기의 이름은 백운동 서원이었으나 이후 퇴계가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 나라의 합법적인 인정을 요청했다. 이에 명종은 친필로 쓴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한다’라는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편액을 하사했다.
매표소를 지나 보물 제 59호인 숙수사지 당간지주를 지나면 우측으로 낙동강의 원류로 불리는 죽계수가 흐른다.
죽계수 너머 취한대라는 조그만 정자가 보이고 물에 잠긴 바위에 붉은 글자로 새겨진 경(敬)자 바위가 보인다. 경내로 접어들면 유생들이 강학하던 강학당, 안향선생을 비롯 안축, 안보, 주세붕 네 분의 위패를 모신 문성공 사당, 원장, 교수들의 집무실 겸 숙소인 동서재, 유생들이 공부하던 기숙사 학구재, 사료전시관등이 있다. 그중 사료전시관에서는 서원의 역사, 배향인물, 고문서, 서화, 목판 등을 직접 볼 수 있으며 특히 서예와 탁본을 위한 도구들이 갖추어져 있어 붓글씨와 탁본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소수서원 주변에는 고구려식 벽화 고분으로 삼국시대의 회화, 종교관, 내세관 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순흥읍내리고분벽화, 금성단, 금성대군 위리안치지, 꽃살 창호로 유명한 성혈사 나한전 등이 있어 이 일대는 역사문화 체험관광의 최적지라고 할 수 있다.
소수서원에서 동북쪽으로 약 15분 정도 차를 달리면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아름다운 사찰이라고 칭송한 부석사가 있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해동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사찰.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닦은 화엄교학을 펴기 위해 귀국해 이 절을 창건했으며 이는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됐다.
그러나 신라 화엄종의 도량임에도 불구하고 본전인 무량수전에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셨고 무량수전 앞에 안양문을 세웠으니 땅 위에 극락 세계를 옮겨 놓은 격이 됐다. 부석사라는 명칭은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부른데서 연유된 이름.
경내에는 신라유물인 무량수전 앞석등(국보 제17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등이 있고 고려시대 유물인 무량수전(국보 제18호), 조사당(국보 제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 등이 있다.
특히 무량수전은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이며 조사당벽화는 목조 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유물전시관에 보관돼 있다.
◆찾아가는 길
대중 교통을 이용할 때는 서울, 부산, 대구 등지에서 시외버스를 이용해 영주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면 소수서원까지 30분, 부석사까지는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자가용은 경부(중부)고속도로 - 신갈(호법)IC - 영동고속도로 - 만종분기점 - 중앙고속도로 - 풍기IC - 소수서원.
/문향숙기자 cult@siminnews.net
특히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있어 유교문화의 중심으로 꼽히는 영주는 중요한 문화 유산인 불교문화의 보고 ‘부석사’로 문화유산과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고장으로 가는 곳마다 역사의 숨결이 묻어나 경북 북부 관광의 요람이 되고 있다.
춘천과 대구를 잇는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우람한 산세와 때묻지 않는 주위 경관을 즐기며 달려가다 풍기 IC로 빠지면 영주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소수서원을 만나게 된다.
소수서원은 조선 최초의 서원이자 국가의 인정을 받은 첫 사액서원이다.
서원은 선현을 배향하고 교육하는 조선조 사립 교육기관으로 선현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 학문을 배우고 논하는 강학당, 학생들이 기숙하는 재(齋)가 기본 시설이다. 소수서원은 1543년(중종 36년)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흠모하던 회헌 안향의 사당을 숙수사지에 세우면서 시작됐다.
초기의 이름은 백운동 서원이었으나 이후 퇴계가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 나라의 합법적인 인정을 요청했다. 이에 명종은 친필로 쓴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한다’라는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편액을 하사했다.
매표소를 지나 보물 제 59호인 숙수사지 당간지주를 지나면 우측으로 낙동강의 원류로 불리는 죽계수가 흐른다.
죽계수 너머 취한대라는 조그만 정자가 보이고 물에 잠긴 바위에 붉은 글자로 새겨진 경(敬)자 바위가 보인다. 경내로 접어들면 유생들이 강학하던 강학당, 안향선생을 비롯 안축, 안보, 주세붕 네 분의 위패를 모신 문성공 사당, 원장, 교수들의 집무실 겸 숙소인 동서재, 유생들이 공부하던 기숙사 학구재, 사료전시관등이 있다. 그중 사료전시관에서는 서원의 역사, 배향인물, 고문서, 서화, 목판 등을 직접 볼 수 있으며 특히 서예와 탁본을 위한 도구들이 갖추어져 있어 붓글씨와 탁본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소수서원 주변에는 고구려식 벽화 고분으로 삼국시대의 회화, 종교관, 내세관 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순흥읍내리고분벽화, 금성단, 금성대군 위리안치지, 꽃살 창호로 유명한 성혈사 나한전 등이 있어 이 일대는 역사문화 체험관광의 최적지라고 할 수 있다.
소수서원에서 동북쪽으로 약 15분 정도 차를 달리면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아름다운 사찰이라고 칭송한 부석사가 있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해동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사찰.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닦은 화엄교학을 펴기 위해 귀국해 이 절을 창건했으며 이는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됐다.
그러나 신라 화엄종의 도량임에도 불구하고 본전인 무량수전에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셨고 무량수전 앞에 안양문을 세웠으니 땅 위에 극락 세계를 옮겨 놓은 격이 됐다. 부석사라는 명칭은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부른데서 연유된 이름.
경내에는 신라유물인 무량수전 앞석등(국보 제17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등이 있고 고려시대 유물인 무량수전(국보 제18호), 조사당(국보 제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 등이 있다.
특히 무량수전은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이며 조사당벽화는 목조 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유물전시관에 보관돼 있다.
◆찾아가는 길
대중 교통을 이용할 때는 서울, 부산, 대구 등지에서 시외버스를 이용해 영주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면 소수서원까지 30분, 부석사까지는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자가용은 경부(중부)고속도로 - 신갈(호법)IC - 영동고속도로 - 만종분기점 - 중앙고속도로 - 풍기IC - 소수서원.
/문향숙기자 cult@simi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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