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14일 금요일 맑음.
42시간만에 우루무치에 도착했다.
열차표 책자에는 47시간 정도 걸릴거라 표시되어 있는데 의외로 빨리 도착했다. 대부분의 중국 기차가 조금씩 늦은 경우가 일반적인 일인데 확실하게 빨리 도착했다. 이렇게 중국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기차여행은 드물 만큼 생각지 못한 2박3일의 조용한 시간이었다.
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말 그대로 스텝과 나무 없는 산들과 사막의 실크로드 선상의 보물들이 가득했던 지역들을 지나 우루무치에 도착 한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탓에 중국의 투자는 이제부터 서부 대개발에 쏟아 붇겠다는 단오한 중국정부의 의지로 인해 우루무치까지 복선 열차 기초 공사를 하느라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다.
사람들의 의식구조 변화와 함께 환경의 변화도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2568km를 달려오면서 지나온 나의 과거도 함께 동행했다.
우루무치는 신강 위그루 자치구의 소재지며 천산북부, 준가얼분지 남원 중부에 자리잡고 있는 세계에서 해양과 제일 멀리 떨어진 도시다.
도시 면적은 62킬로제곱미터이고 144만의 사람들이 살고있으며 신강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우루무치는 몽골어로 아름다운 목장을 의미하며 천산 남북로의 교통요로다.
시내지역에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모양은 관대한 천산의 품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쪽에는 아마리커산과 서북쪽의 홍산이 맞대여 있으며 중간에는 몇백미터나 되는 골짜기가 남북으로 곧게 뻗어있다. 두 산벼락 위의 고탑이 잘 어울려 있는 정경은 우루무치의 상징으로 되어있다.
우루무치는 오래된 도시이면서도 또 새로운 도시다. 행방전에는 바람이 불지 않아도 먼지가 석자나 되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온 거리가 진흙으로 쌓여 있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낙후한 도시였다.
그렇지만 해방 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루무치는 창상거변 (풍상고초를 거친후의 큰 변화)이 일어났다. 특히 개혁 개방후의 지금 시내에는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섰으며 차가 그칠 사이없이 많이 다니고 있는 변화된 거리를 볼 수 있다.
우루무치는 비록 사막 대륙성 기후이지만 산과 물이 둘러 싸여있는 수려한 지리환경으로 기후가 비교적 온화하고 강수량은 비록 적지만 천산의 설물이 있어 일찍이 농민들이 농사를 지어 부흥했다고 한다.
지금 주변 농촌의 농업 생산은 도시에 풍부한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다.
우루무치는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에 위치한 교통중심이며 고대의 실크로드의 길 북쪽에서 이곳을 경유해 서쪽으로 갔다. 세월이 지난 지금 중국과 아시아를 오가는 여행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으며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42시간만에 우루무치에 도착했다.
열차표 책자에는 47시간 정도 걸릴거라 표시되어 있는데 의외로 빨리 도착했다. 대부분의 중국 기차가 조금씩 늦은 경우가 일반적인 일인데 확실하게 빨리 도착했다. 이렇게 중국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기차여행은 드물 만큼 생각지 못한 2박3일의 조용한 시간이었다.
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말 그대로 스텝과 나무 없는 산들과 사막의 실크로드 선상의 보물들이 가득했던 지역들을 지나 우루무치에 도착 한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탓에 중국의 투자는 이제부터 서부 대개발에 쏟아 붇겠다는 단오한 중국정부의 의지로 인해 우루무치까지 복선 열차 기초 공사를 하느라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다.
사람들의 의식구조 변화와 함께 환경의 변화도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2568km를 달려오면서 지나온 나의 과거도 함께 동행했다.
우루무치는 신강 위그루 자치구의 소재지며 천산북부, 준가얼분지 남원 중부에 자리잡고 있는 세계에서 해양과 제일 멀리 떨어진 도시다.
도시 면적은 62킬로제곱미터이고 144만의 사람들이 살고있으며 신강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우루무치는 몽골어로 아름다운 목장을 의미하며 천산 남북로의 교통요로다.
시내지역에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모양은 관대한 천산의 품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쪽에는 아마리커산과 서북쪽의 홍산이 맞대여 있으며 중간에는 몇백미터나 되는 골짜기가 남북으로 곧게 뻗어있다. 두 산벼락 위의 고탑이 잘 어울려 있는 정경은 우루무치의 상징으로 되어있다.
우루무치는 오래된 도시이면서도 또 새로운 도시다. 행방전에는 바람이 불지 않아도 먼지가 석자나 되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온 거리가 진흙으로 쌓여 있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낙후한 도시였다.
그렇지만 해방 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루무치는 창상거변 (풍상고초를 거친후의 큰 변화)이 일어났다. 특히 개혁 개방후의 지금 시내에는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섰으며 차가 그칠 사이없이 많이 다니고 있는 변화된 거리를 볼 수 있다.
우루무치는 비록 사막 대륙성 기후이지만 산과 물이 둘러 싸여있는 수려한 지리환경으로 기후가 비교적 온화하고 강수량은 비록 적지만 천산의 설물이 있어 일찍이 농민들이 농사를 지어 부흥했다고 한다.
지금 주변 농촌의 농업 생산은 도시에 풍부한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다.
우루무치는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에 위치한 교통중심이며 고대의 실크로드의 길 북쪽에서 이곳을 경유해 서쪽으로 갔다. 세월이 지난 지금 중국과 아시아를 오가는 여행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으며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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