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INK:1} 불광동 구기터널 입구에 가면 ‘마운틴’이라고 하는 자그마한 찻집이 있다.
말이 좋아 찻집이지 사실은 여느 집 골방(?) 수준이다. 탁자라고는 겨우 3개만 덩그라니 놓여 있는 옹색한 공간인데도 이곳을 찾는 단골은 꽤 많다.
특별한 기운이 넘치는 이 곳만의 생기가 손님을 끌어모으는 비결이라면 비결일지 모른다. 그리고 생기의 근원은 잘생기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주인부부가 손님과 더불어 주고받는 대화에 있다.
그들 부부는 찻집을 찾는 객들과 대화하는 것을 무척 즐기는 듯 싶다. 덕분에 그 찻집을 방문한 손님들은 오랜 단골이나 처음 방문한 사람이나 격의없이 그들 부부가 연주하는 대화의 무대에서 자연스런 어울림을 경험하게 된다.
그들 부부가 히말라야 산을 등정하면서 느꼈다는 이야기가 묘한 여운을 남기며 가슴을 울린다.
고산지대로 갈수록 먹을 것은 귀하고 부족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먹을 것이 귀한 지붕 아래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굶어죽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그 마을에는 집에서 기르는 개들도 제법 ‘토실토실’할 정도다.
먹을 것이 부족하지만 서로 다투는 일도 없다. 빵이 아홉 개라도 열사람은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아홉개를 조금씩 나누어 먹으면 되는 까닭이다. 따라서 음식으로 인해 걱정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이 부분에서 주인남자는 ‘검소’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열심히 설명했다. 검소는 나눔의 기초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도 접경지역에 위치한 아랫마을은 소위 ‘황금의 삼각주’라고 불리는 넓은 평야지대로 먹을 것이 넘쳐나는데도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주인을 잃은 개들의 몰골도 처참하다. 너무 말라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죽지 못해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는 어미 개에게 달라붙어 젖을 빨고 있는 강아지의 모습은 살인적이다. 나오지 않는 젖을 빠느라 어미의 젖이 한 뼘이나 늘어지지만 강아지는 그젖꼭지를 놓지 않을 정도다. 거리에는 치열한 생존대열에서 낙오된 무리들이 여기저기 산적해 있다.
‘닉샤’라고 불리는 인력거가 있는 데 그 인력거를 모는 사람의 모습은 한결 같이 뼈만 앙상한 반면 닉샤를 타는 손님은 개기름이 ‘질질’흐르는 뚱보란다.
먹을 것이 부족한 윗마을 보다 오히려 모든 물자가 철철 넘치는 아랫마을 삶의 질이 더 떨어진다는 말이다. 왜 이래야 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윗마을 사람들은 아홉을 가지고 열 사람이 나누며 행복할 수 있지만 아랫마을 사람들은 열둘을 가지고도 저마다 상대 것을 빼앗아 자신의 것을 채우려 하기 때문에 불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새정부가 첫 내각을 구성, 정식으로 출범했다. 부디 새롭게 출범하는 참여정부가 ‘나눔의 미학’을 실천하는 윗마을 사람의 행복을 알려주는 정책을 펼쳐주기 바란다.
말이 좋아 찻집이지 사실은 여느 집 골방(?) 수준이다. 탁자라고는 겨우 3개만 덩그라니 놓여 있는 옹색한 공간인데도 이곳을 찾는 단골은 꽤 많다.
특별한 기운이 넘치는 이 곳만의 생기가 손님을 끌어모으는 비결이라면 비결일지 모른다. 그리고 생기의 근원은 잘생기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주인부부가 손님과 더불어 주고받는 대화에 있다.
그들 부부는 찻집을 찾는 객들과 대화하는 것을 무척 즐기는 듯 싶다. 덕분에 그 찻집을 방문한 손님들은 오랜 단골이나 처음 방문한 사람이나 격의없이 그들 부부가 연주하는 대화의 무대에서 자연스런 어울림을 경험하게 된다.
그들 부부가 히말라야 산을 등정하면서 느꼈다는 이야기가 묘한 여운을 남기며 가슴을 울린다.
고산지대로 갈수록 먹을 것은 귀하고 부족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먹을 것이 귀한 지붕 아래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굶어죽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그 마을에는 집에서 기르는 개들도 제법 ‘토실토실’할 정도다.
먹을 것이 부족하지만 서로 다투는 일도 없다. 빵이 아홉 개라도 열사람은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아홉개를 조금씩 나누어 먹으면 되는 까닭이다. 따라서 음식으로 인해 걱정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이 부분에서 주인남자는 ‘검소’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열심히 설명했다. 검소는 나눔의 기초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도 접경지역에 위치한 아랫마을은 소위 ‘황금의 삼각주’라고 불리는 넓은 평야지대로 먹을 것이 넘쳐나는데도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주인을 잃은 개들의 몰골도 처참하다. 너무 말라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죽지 못해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는 어미 개에게 달라붙어 젖을 빨고 있는 강아지의 모습은 살인적이다. 나오지 않는 젖을 빠느라 어미의 젖이 한 뼘이나 늘어지지만 강아지는 그젖꼭지를 놓지 않을 정도다. 거리에는 치열한 생존대열에서 낙오된 무리들이 여기저기 산적해 있다.
‘닉샤’라고 불리는 인력거가 있는 데 그 인력거를 모는 사람의 모습은 한결 같이 뼈만 앙상한 반면 닉샤를 타는 손님은 개기름이 ‘질질’흐르는 뚱보란다.
먹을 것이 부족한 윗마을 보다 오히려 모든 물자가 철철 넘치는 아랫마을 삶의 질이 더 떨어진다는 말이다. 왜 이래야 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윗마을 사람들은 아홉을 가지고 열 사람이 나누며 행복할 수 있지만 아랫마을 사람들은 열둘을 가지고도 저마다 상대 것을 빼앗아 자신의 것을 채우려 하기 때문에 불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새정부가 첫 내각을 구성, 정식으로 출범했다. 부디 새롭게 출범하는 참여정부가 ‘나눔의 미학’을 실천하는 윗마을 사람의 행복을 알려주는 정책을 펼쳐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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