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문화 / 시민일보 / 2003-03-31 18:4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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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출신 교수 현지서 통역으로 부업
    서울에서 온 여행자라고 소개를 하니 이 먼 곳에서 한국 사람을 만날 줄은 전혀 몰랐다며 상당히 의아해 하는 표정이었다.

    알마타의 민족종합학교에서 노동과 사회관계를 가르친다는 그분은 일본의 NHK 방송국에서 카스피해의 석유 매장량에 대한 취재를 왔는데 일본어 통역으로 4박5일간 아크타우에 출장 오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말하는 고려인이 일본어 통역을 한다는 것이 좀 이상해 어떻게 일본말을 배웠냐고 물으니 잠시 생각하던 그분은 자기의 고향은 평양으로 김일성 시대에 모스크바로 일본어 유학을 하게 되었는데 유학을 모두 마치고 나서 귀국하라는 북한의 명령을 거부하고 모스크바를 피해 카자흐스탄 공화국으로 몰래 도망 왔다가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이젠 완전한 카자흐스탄 국적을 얻게 되었다고 했다.

    까작어, 러시아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가 능통한 관계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이 방해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통역으로 약간의 돈벌이를 한다고 했다.

    센츄럴 아시아 여행을 마치고 알마타를 통해 중국으로 들어가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하니 알마타에 오게 되거든 반드시 집에 들러 달라고 하면서 기차 안에서 먹으라며 그분이 식사하려고 준비한 햄버거 3개를 배낭에 넣어주시고는 기차역까지 가려면 외국인한테는 택시요금을 비싸게 부를 테니 직접 잡아준다며 택시까지 손수 잡아 줘 바가지 엎어 쓸 상황까지 모면하게 되었다.

    혼자 산다는 나의 말에 더 늦기 전에 어여쁜 색싯감 한 명 알아보겠다는 그분의 성함은 김종훈 교수였다.

    알마타에서 아크타우에 들어올 때 경찰서에 신고를 한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나간다는 신고를 해야만 했다.

    카자흐스탄에 입국할 때 오비르에 등록한 것이 큰 신고라면 지방을 여행할 때마다 등록을 해야하는건 작은 신고에 해당된다고 봐야겠다.

    그래도 외국인이라 좀 상냥스러웠지만 여전히 고압적인 태도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과도 같았으며 기차역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언제나 허락을 받고 찍어야만 했다.

    이런 불편함을 무릅쓰고 여행을 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아트라우로 향하는 4인승 쿠페 열차안에 내 옆 침대칸에는 까작아가씨 알피아가 누워있고 바로 내 위에 있는 침대칸에는 윗옷을 벗어놓고 왔다갔다하던 더위를 참지 못하는 루스키 청년 데니스가 자고있다.

    벌겋게 달아오는 피부가 후끈후끈 하기 시작한다.

    거기에다가 카스피해의 맑은 물에서 수영하는 시간도 부족한 상황에 동서남북 어느곳을 바라봐도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 금발의 미녀 아가씨들 쳐다보다가 미끄러운 바위에서 넘어지면서 삐끗했던 오른쪽 손목마저 쑤셔오기 시작했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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