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했던 시절… 잿빛 풍경

    문화 / 시민일보 / 2003-05-05 1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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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에서 온 아이 최병선 지음/ 아카데미아 刊
    비 새는 판잣집에서 멀겋게 끓인 풀죽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 아이들은 부엌에서 삶아놓은 보리쌀을 훔쳐먹었고, 어쩌다 ‘꿀꿀이 죽’을 먹어보고는 그 맛에 감격했다.

    허기에 지쳐 아카시아꽃을 따먹다 벌에 쏘여 죽은 아이들, 지뢰를 밟아 사라진 아이들, 눈보라 치는 밤 움막에서 잠자다 세상을 떠난 고아 남매. 굶는 아이들을 보며 눈물 삼키고 명절이 되면 북녘 고향에 두고온 부모형제가 그리워 통곡하는 부모들.

    영양실조에 걸려 배만 볼록 나온 아이들은 차라리 들판이나 강, 산으로 다니며 먹을 것을 찾았다. 개구리, 벼메뚜기, 칡뿌리들이 아이들의 유일한 간식거리였다.

    나무로 만든 장난감 총, 심지어 들판에 널려 있는 해골이나 뼈까지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으로 둔갑했다.

    중견화가 최병선이 만화를 그리고 글을 쓴 ‘평양에서 온 아이’(아카데미아刊)는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전쟁과 가난 속에서 우울한 잿빛 삶을 살아야 했던 세대의 모습을 아이의 눈을 통해 애잔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칠성이는 평양에서 피난내려온 넉넉지 못한 집안의 아이다. 공부도 못하고 개구쟁이지만 정이 가득하다.

    칠성이는 밥을 실컷 먹을 수 있을까 해서 각설이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체면상 배부르게 먹은 척 배를 내밀고 다니기도 한다. 또 예쁜 여자친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엉뚱한 짓도 하고 다닌다.

    이 책은 모두 10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부모님, 친구, 풀벌레, 냇가, 여자친구, 들길, 배고픔, 비오는 날, 하늘, 그 시절 등.

    이 책이 그 시대의 암울한 색으로만 가득찬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내 땅을 내 발로 힘차게 다시 밟기 위해’ 온갖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냈던 민초들의 강한 생활력, 배고픔 속에서도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느끼는 희망, 가족과 이웃과의 두터운 정 등이 그려져 있다.

    이 책은 스포츠조선에 연재됐던 ‘아빠 어렸을 적에...’를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다.

    누구나 아물지 않은 상처처럼 지니고 있는 아픈 세월에 대한 추억 속에 그래도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244쪽.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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