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문화 / 시민일보 / 2003-05-19 16: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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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융슝한 접대에 짧기만한 여름밤
    200달러에서 시작한 뒷돈은 50달러로 그리곤 12달러인 15,000숨으로 결정은 하고는 더럽고 지저분한 경찰관의 입에 처넣고 국경선을 빠져나오는 우즈벡스탄의 첫날이 나로 하여금 구역질나게 만들어 버렸다.

    타지크스탄 대사관의 사파로브의 폭리에 가까운 비자비나 키르키스탄 경찰관들의 몸수색은 그나마 약간이라도 변명할 만한 이유라고 있었지만 오늘 우즈벡키스탄 경찰관의 저능아 같아 행동은 도저히 이해를 하려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솥뚜껑이 열리며 시작한 우즈벡키스탄의 첫발이었다.

    치르치크까지 40분을 달려간 택시비가 겨우 2달러이니 12달러면 만만치 않은 돈인데 그런 돈을 더러운 우즈벡키스탄 경찰관한테 빼앗겼으니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

    내눈치 보며 어찌할 바 모르는 라야 때문에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복언니인 스비에타의 집에 도착해서야 겨우 마음이 가라앉았다. 널찍한 마당에 포도넝쿨이 앞마당을 뒤덮고 있고 닭들과 칠면조들이 뒷마당에서 개들의 호위를 받으며 뛰놀고 있는 스비에타의 집은 옛 소련시절에는 상당히 부유한 집이었다고 했다.

    근 3년만에 만나는 스비에타와 라야의 시간가는 줄 모르는 대화는 밤을 꼬빡 세웠다.

    서울에서 온 손님이라며 저녁상은 온통 한국음식으로 준비하였다.

    씨레기국에다가 돼지볶음, 고추복음, 오이무침, 각종 나물무침, 삶은 계란 등 사발에다 퍼주는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바로 숟가락을 놓자마자 나오는 것이 보드카에 각종 과일이 그 뒤를 따라 위가 쉴 사이를 주지 않고 식탁이 휘청휘청할 정도로 새로운 음식이 끊이질 않았다.

    그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서울에서 먹는 음식 맛과 거의 같았다.

    지독한 보드카 한 병을 홀짝홀짝 마시며 스비에타와 라야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여름밤이 짧기만 했다.

    오늘 한낮의 온도가 39도까지 올라갔다.

    입국할 때 한바탕 소란을 피운 탓으로 일요일인 오늘은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내일 오비르에 거주지 등록을 하면서 여행을 시작하자는 라야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널찍한 응접실을 침실로 준비를 해주고 큼지막한 책상까지 하나 마련해 줘 느긋하게 책을 보며 앞마당에서 따온 포도와 함께 지낼 수 있었다.

    스비에타 가족은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무엇 때문에 우즈벡키스탄으로 배낭여행을 왔는지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분위기였다.

    많고 많은 나라들 중에 이토록 불편하고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이곳으로 배낭을 짊어지고 온 이유가 처음엔 내가 라야의 신랑으로 착각을 했다고 했다. 3년만에 만나다 보니 라야가 결혼해 인사차 들른 것으로 오해를 했다며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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