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미학의 ‘경계’탐색

    문화 / 시민일보 / 2003-06-17 18: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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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현대 독일회화 거장 ‘3인展’
    독일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들이 한국에서 현대회화의 진수를 펼친다.

    오는 22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초대전을 갖는 독일작가는 게하르트 리히터(71), 고타르트 그라우브너(73), 이미 크뇌벨(63). 현대미술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겨가고 있는 이들은 색채미학의 새 지평을 열어 보이며 자신의 존재를 국제무대에서 한껏 과시하고 있다.

    이중 리히터는 세계 생존화가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탄탄한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작가. 한국에도 이미 잘 알려진 그는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영예의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크뇌벨과 그라우브너 역시 세계 50대 화가 명단에 넣어도 손색이 없는 거목들이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그라우브너는 세계 유명 미술관은 물론 베를린의 독일연방 대통령 관저와 연방의회에 대작이 설치돼 있어 그 성가를 짐작케 한다.

    이들은 10년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여러 공통점을 갖고 있다. 사실상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세 작가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독일 현대미술의 중심지였던 뒤셀도르프에서 공부하고 작업한 인연이 있다.

    뒤셀도르프의 역동성을 세례받으며 상호 밀접하게 교류한 것이다.

    모두 옛 동독에서 태어나 나중에 뒤셀도르프로 이주했다는 것도 이들의 회화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들은 독일사회에 몰아치는 뜨거운 정치적 담론에서 비켜선 아웃사이더로서 경계와 경계, 중심부와 주변부의 조화와 균형에 대해 독자적 목소리를 냈다.

    리히터가 대립적으로 이해됐던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무너뜨려 ‘불가사의’라는 평가를 받았다면, 크뇌벨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에 주목해 추상회화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반면 그라우브너는 색채와 색채의 경계를 관계로 승화시키면서 ‘색채신체(Farbekoerper)’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셋 중 이번에 가장 주목받는 화가는 아무래도 리히터다. 한때 미국의 팝아트에 빠진 그는 독일 낭만주의 전통을 계승하고 신표현주의를 주창하며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출품작에서 보듯이 그는 사진과 회화의 만남을 시도해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물어뜨렸다. 나아가 사진과 회화가 각기 표현할 수 없는 또다른 회화영역을 개척하며 재현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자신감을 부여했다.

    이를테면 사진과 회화의 상호전이와 공존 모색이라는 제3의 길을 연 것이다.

    크뇌벨은 예리한 직관과 치밀한 계산으로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어선다. 1960년대 초반 카시미르 말레비치에서 출발한 그는 추상회화의 가능성을 ‘검은색 사각형’에서 찾아냈다.

    그는 평면과 사각틀, 그리고 원색을 바탕으로 건축적 풍경화를 그려냈다.

    모네의 계보를 잇는 것으로 평가되는 그라우브너는 형식실험에 앞서 전통에 입각해 회화의 본질을 파고든다.

    빛과 색채라는 회화의 대명제에 충실한 가운데 ‘색채 신체’라는 세계를 개척했는데, 각진 모서리의 캔버스가 아니라 부드러운 쿠션으로 처리된 화면은 색채의 미묘함과 어울려 에로틱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미술사가 김정희(서울대 서양화과 교수)씨는 “세 작가는 형태의 보조 정도로 여겨지던 색채를 주체로 전면에 끌어내는 데 이바지했다”면서 “각기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긴 하나 이들은 색채의 물질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작품에는 서양 현대미술사가 다층적으로 반영돼 있다”고 평가했다.

    전시작품 설명회는 오는 14일(고려대 강사 송남실) 오후 2시에 열린다.

    입장료는 일반 3000원, 초,중,고생 2000원. (02)734-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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