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칼럼 / 시민일보 / 2003-08-04 17: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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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3) ‘낮에 뜬 별’들의 행진

    이만성은 잠시 꿈속을 헤매다 불에 덴 듯 화닥닥 뛰어 일어났다. 어깨에 통증을 느끼며 얼굴을 찌푸리는 순간이었다.

    문제의 군인들이 20m 전방 가파른 고갯길을 허겁지겁 기어올라가고 있었다. 아니, 저것들이 도망을….

    “어이, 3명의 치한들 당장 멈춰서거라! 일본군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린 놈들, 내 손에 맞아죽지 않으려면 얌전히 멈춰서란 말이다! 비겁하게 돌맹이로 뒤통수치고 내빼다니!”

    이만성은 천둥번개치듯 일갈했다. 녀석들이 힐끗 뒤돌아보더니 엉거주춤 멈춰섰다.

    “아니, 저놈이 반쯤 골로간 줄 알았는데…. 딱 부러지게 죽여달라고 애원하고 있잖아? 그래 소원성취시켜주마! 본래 자선사업하기 좋아하는 우리들이니까”

    이만성이 뒤쫓아가려다 말고 우뚝섰다. 녀석들이 자진해서 뛰어내려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도를 한다는 그치가 허세를 부린답시고, 겁도없이 육탄공격을 퍼붓는다. 다급한 순간이었다.

    이만성은 옆으로 홱 몸을 피했다. 그리고 돌멩이를 내리쳤던 녀석을 두꺼비 파리잡아먹듯 낚아채어 휘둘러 메어쳤다. 그치는 입주둥아리를 땅바닥에 쳐박고 끙끙 앓으며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있었다.

    이만성은 녀석의 등덜미를 발뒤꿈치로 힘껏 내리찍었다. 윽! 하고, 녀석은 다시 한번 이마빼기를 땅바닥에 쳐박고 기다랗게 뻗어버렸다.

    이 때였다. 문제의 유도 고단자가 눈알을 까뒤집고, 돼지 멱따는 소리 씹어 뱉으며 이만성을 향해 돌격을 감행한 것은…

    “어이, 멈춰라! 군인들이 왜 영외(營外)로 나와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게냐? 세사람 모두 내 앞으로 뛰어와!”
    느닷없이 서릿발같은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3명의 군인들이 기겁을 하며 일제히 부동자세를 취했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이만성도 겁에질려 몸을 사리고 멈춰섰다.

    육군중위-저치들의 직속상관인가보다! 이만성은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이쪽에서 정당성을 주장한다해도 육군중위는 부하들을 두둔할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그릇된 선입견임을 이만성은 곧 터득할 수 있었다. 3명의 일등병-그들은 건성으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맘속에 불만이 가득 차 있다는 기미를 육감으로 짚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육군중위는 졸병들의 관등성명을 수첩 속에 적어 넣고 나서, 부대로 돌려보냈다. 이만성은 육군 중위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사실대로 소상히 털어놓았다.

    “잘 알고 있소, 처음부터 끝가지 지켜보았으니까요. 어디 사시는 누구이신지 주소와 이름을 말해주시오. 금명간 내가 댁으로 찾아가리다!”

    이만성은 일본어로 하소연을 했었건만, 육군중위는 유창한 서울 말씨로 받으며 친절을 베풀었다.

    육군중위, 그는 일본인 아닌 조선인 서병천(徐炳天)이었다. 서 중위의 도움으로 이만성은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모면한 것이었다.

    그런데, 3명의 일등병들은 1계급 강등과 동시에 영창생활을 했다. 그리고 이틀 후 서 중위는 이만성을 달미동집으로 찾아왔다.

    “조선사람 10명 20명이 그 장면을 목격했다해도 생명의 위험을 느껴서, 호랑이굴로 뛰어들지 못했을 거요. 이만성씨 혼자서 악명높은 현역군인들과 결투를 벌였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지요. 내가 제주땅에 온지 16개울 남짓 되었지만, 이형같은 용감무쌍한 청년을 발견한 건 처음이라구요. 내가 큰 뜻을 품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형같은 사람을 찾으려고 대낮에 등불켜서 3천리강산을 헤매었다고 말한다면 믿어지지 않겠지요? 하지만, 그건 사실이에요. 나는 이형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야 말겠고”

    서 중위는 흐뭇해하는 얼굴로,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았다.

    “고맙습니다만 지나친 과찬을…. 은혜 입은 쪽은 이만성인데요 뭘, 서 중위님은 저의 생명의 은인이라구요. 그때 서 중위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죽었을테니까요”

    이만성은 고개를 꾸벅거리며, 서 중위의 손을 붙잡아 정신 없이 흔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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