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낮에 뜬 별’들의 행진
“저는 제주인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말을 여러번 되풀이한 적이 있습니다. 황금동굴을 발견하기 이전부터 말입니다. 옛날의 저의 조상이 경솔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던들, 저의 집안은 오늘의 모습이 아니었을겁니다. 저도 물론 오늘의 제가 아닐터이구…”
서병천은 울먹거렸다. 말못할 응어리가 가슴속 깊이 박혔다는 뜻일까? 조상의 경솔 어쩌고 하면서 비창함과 서글픔을 나타냈으니….
“조상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셨기에…뭔가 사연이 있나본데, 가족이나 다름없으니까 기탄없이 얘길해보게, 말로나마 응어리는 풀어버리는게 신상에 좋을걸세!”
이양국은 무엇보다도 조상운운한 소리에 귀가 솔깃해지면서 부쩍 구미가 동했다. 겸연쩍어하면서도 꼬드기는 목소리로 은근히 채근을 했다.
“네, 말씀드릴게요. 난생 처음 부모님 같은 분이니까 선생님께 읍소(泣訴)를 할까 합니다. 놀라지는 마십시오, 워낙 충격적인 얘기가 되어놔서 말입니다.”
서병천은 느긋함을 보여준답시고 어설프게 헛기침을 했다.
“제주땅에 임금님이 태어날 수 있는 명당중의 명당이 있다는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저의 8대조가 그 자리를 차지할 뻔했었는데, 그 아드님들의 경솔한 행동 탓에 놓쳐 버렸다지 뭡니까. 문제의 명당자리는 아직도 그 자리에 보존되어 있지 않나 여겨지거든요. 외람된 말씀 입니다만, 저는 그 자리를 찾고야 말겠다고 결심을 한 겁니다. 두고보십시오, 저는 한다면 하는 놈이니까요”
“임금이 날 수 있다는 명당? 옛날부터 그런 명당자리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네만…. 그래 어떻게 그 자리를 차지할 뻔 했었는지 배경을 설명해 보게나! 정말 꿈 같은 얘기를 듣게 되는군 그래”
이양국은 깊은 관심을 갖고서 눈빛을 번뜩이며 군침을 꿀꺽 삼켰다.
“제가 배경설명을 할께요.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의 얘기 듣는 셈치고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2백여년전의 얘기가 되겠지요. 저의 8대 할아버지가 사시는 서울집에 20세의 여자종이 있었답니다.”
서병천은 이렇게 말머릴 꺼냈다.-어느날 밤 8대조의 며느리 김씨부인이 퇴근시간이 늦어진 남편을 기다리느라 자정이 넘도록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초조해진 나머지 앞 마당으로 나갔다. 대문안을 기웃거리다 귀를 쫑긋 세웠다. 귀기어린 울음소리가 어렴풋이 귓전을 스쳤기 때문이었다.
“혹시 도깨비 소리…?”
그렇게 중얼거리는 동안, 몸과 마음은 빳빳이 굳어버렸다. 얼어붙은 채 제자리에 멈춰섰다.
흑·흑·으흐흐흑… 끊겼다 이어졌다 하면서, 울음소리는 끈질기게 뼛속으로 파고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이판사판이 아닌가?
“도깨비든 귀신이든 겁날 것 없다! 어디 네가 죽나 내가 죽나 한번 겨루어보자꾸나!”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자 자신감이 생겼다. 여전히 울음소리는 들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소리의 출처는 지척의 거리임을 가늠할 수 있었다. 뒷마당-살얼음판 기듯 살금살금 뒤뜰로 걸어갔다. 그녀의 눈길을 끌어당기는 것은 뒤주였다. 허름한 뒤주 언저리에서 울음소리는 박자에 맞추어 노래부르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참동안 멈춰 서서 확인해 보았지만, 소리의 출처는 뒤주였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화다닥 달려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뒤주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으악! 이게 뭐야? 사, 사람이…”
비명을 내지르며 들여다보니 그건 낯익은 여자가 아닌가. 김 부인은 부리나케 뒤주 속의 여자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3일전에 종적을 감춘 여자 종-순박하고 부지런하고 착하디 착한 처녀아이였는데, 어쩌다 이처럼 비참한 꼴이 되어버렸단 말인가?
내막이야 어떻든지 간에 김 부인은 흘러내리는 자신의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처녀아이의 손목을 붙잡고 자신의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저는 제주인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말을 여러번 되풀이한 적이 있습니다. 황금동굴을 발견하기 이전부터 말입니다. 옛날의 저의 조상이 경솔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던들, 저의 집안은 오늘의 모습이 아니었을겁니다. 저도 물론 오늘의 제가 아닐터이구…”
서병천은 울먹거렸다. 말못할 응어리가 가슴속 깊이 박혔다는 뜻일까? 조상의 경솔 어쩌고 하면서 비창함과 서글픔을 나타냈으니….
“조상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셨기에…뭔가 사연이 있나본데, 가족이나 다름없으니까 기탄없이 얘길해보게, 말로나마 응어리는 풀어버리는게 신상에 좋을걸세!”
이양국은 무엇보다도 조상운운한 소리에 귀가 솔깃해지면서 부쩍 구미가 동했다. 겸연쩍어하면서도 꼬드기는 목소리로 은근히 채근을 했다.
“네, 말씀드릴게요. 난생 처음 부모님 같은 분이니까 선생님께 읍소(泣訴)를 할까 합니다. 놀라지는 마십시오, 워낙 충격적인 얘기가 되어놔서 말입니다.”
서병천은 느긋함을 보여준답시고 어설프게 헛기침을 했다.
“제주땅에 임금님이 태어날 수 있는 명당중의 명당이 있다는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저의 8대조가 그 자리를 차지할 뻔했었는데, 그 아드님들의 경솔한 행동 탓에 놓쳐 버렸다지 뭡니까. 문제의 명당자리는 아직도 그 자리에 보존되어 있지 않나 여겨지거든요. 외람된 말씀 입니다만, 저는 그 자리를 찾고야 말겠다고 결심을 한 겁니다. 두고보십시오, 저는 한다면 하는 놈이니까요”
“임금이 날 수 있다는 명당? 옛날부터 그런 명당자리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네만…. 그래 어떻게 그 자리를 차지할 뻔 했었는지 배경을 설명해 보게나! 정말 꿈 같은 얘기를 듣게 되는군 그래”
이양국은 깊은 관심을 갖고서 눈빛을 번뜩이며 군침을 꿀꺽 삼켰다.
“제가 배경설명을 할께요.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의 얘기 듣는 셈치고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2백여년전의 얘기가 되겠지요. 저의 8대 할아버지가 사시는 서울집에 20세의 여자종이 있었답니다.”
서병천은 이렇게 말머릴 꺼냈다.-어느날 밤 8대조의 며느리 김씨부인이 퇴근시간이 늦어진 남편을 기다리느라 자정이 넘도록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초조해진 나머지 앞 마당으로 나갔다. 대문안을 기웃거리다 귀를 쫑긋 세웠다. 귀기어린 울음소리가 어렴풋이 귓전을 스쳤기 때문이었다.
“혹시 도깨비 소리…?”
그렇게 중얼거리는 동안, 몸과 마음은 빳빳이 굳어버렸다. 얼어붙은 채 제자리에 멈춰섰다.
흑·흑·으흐흐흑… 끊겼다 이어졌다 하면서, 울음소리는 끈질기게 뼛속으로 파고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이판사판이 아닌가?
“도깨비든 귀신이든 겁날 것 없다! 어디 네가 죽나 내가 죽나 한번 겨루어보자꾸나!”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자 자신감이 생겼다. 여전히 울음소리는 들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소리의 출처는 지척의 거리임을 가늠할 수 있었다. 뒷마당-살얼음판 기듯 살금살금 뒤뜰로 걸어갔다. 그녀의 눈길을 끌어당기는 것은 뒤주였다. 허름한 뒤주 언저리에서 울음소리는 박자에 맞추어 노래부르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참동안 멈춰 서서 확인해 보았지만, 소리의 출처는 뒤주였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화다닥 달려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뒤주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으악! 이게 뭐야? 사, 사람이…”
비명을 내지르며 들여다보니 그건 낯익은 여자가 아닌가. 김 부인은 부리나케 뒤주 속의 여자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3일전에 종적을 감춘 여자 종-순박하고 부지런하고 착하디 착한 처녀아이였는데, 어쩌다 이처럼 비참한 꼴이 되어버렸단 말인가?
내막이야 어떻든지 간에 김 부인은 흘러내리는 자신의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처녀아이의 손목을 붙잡고 자신의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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